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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무심하시지···.”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채 자라지 못한 모들이 앙상하게 서 있다. 일년 농사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농민들은 하늘을 바라보지만 구름조차 없이 맑다. 논 뿐만이 아니다. 물이 흘러야 할 강도 바닥을 드러냈다. 생기 있게 뻗어야 할 고추줄기는 힘없이 축 쳐졌다.

 

전국이 가뭄으로 초비상이다. 5월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가뭄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904년 시작된 기상관측 이래 최악이다.

 

중부지방까지 올라와 비를 뿌렸어야 할 장마전선은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세력에 밀려 금주 초 남부지방에만 잠시 머물렀다. 제4호 태풍 ‘구촐’의 영향으로 제주와 남해안 지역에 잠시 많은 비를 뿌렸지만, 장마전선은 점차 남하해 제주도 남쪽 먼 바다로 물러갔다. 문제는 이달 하순까지 비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이달 하순까지는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없다.

 

 

▲ 기상청이 발표한 20일 현재 가뭄판단지수. 76개 지역 중 매우 위험한 곳이 52곳이다.

 

 

 

기상청이 매일 발표하는 ‘가뭄판단지수’(강수량·증발량 등을 고려해 가뭄 상황을 4개 등급으로 표시한 것)에 따르면 전국 76개 지역 중 52개 지역이 ‘매우 위험’, ‘가뭄’이 13개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수가 충분한 ‘정상’이 11개 지역에 불과했다. 전국의 90%가 메말랐다는 얘기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49일간 전국에 내린 비의 양은 62.4mm로 평년 165.8mm의 38.7%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이 심각했다. 평년 171mm의 6.2%에 불과한 10.6mm가 내렸다. 5월 한 달 동안 10일에 걸쳐 8.2mm의 비가 내렸을 뿐이다. 6월은 20일 현재까지 총 3일, 2.4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수원·대전·전주 등도 평년 강수량의 11~28% 수준인 17~46㎜의 비가 내렸다. 근 50년 만의 최저 강수량이다. 충남 서산의 경우 지난달 내린 비는 14.5mm로 평년 105.2mm의 13.8% 수준이다. 4월까지만 해도 누적 강수량이 172.6㎜로 평년 171.3㎜ 수준을 유지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는 1978년 같은 기간 14.4mm, 2001년 32.9mm 다음으로 강수량이 적다. 본격적인 모내기를 앞둔 상황이라 피해가 더 크다.

 

  ▲ 5월 1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평년과 비교한 기온, 강수량 그래프

 

불볕더위도 기승을 부렸다. 19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3.5℃까지 올랐다. 6월 기온으로는 2000년 33.9도 이후 12년 만의 최고치다. 33.8℃까지 올라간 인천도 기상관측 개시 이후 6월 최고 기온을 갈아치웠다.

 

경기 이천 34℃, 수원·동두천 33.7℃ 등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기온이 33℃를 넘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오는 26일까지는 낮 기온이 30~33℃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가뭄은 농작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 달 가까이 지속된 가뭄으로 농산물의 생육이 부진해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말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비가 충분히 오지 않을 것으로 예보되면서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19일 현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상등품 대파 1㎏의 평균 도매가격은 2040원으로 최근 한 달 사이에 20% 이상 올랐다. 750원이던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무려 172%가 상승했다.

 

5~6월에 수확한 물량을 1년 동안 저장해 출하하는 양파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 1㎏ 도매가격이 800원으로 693원이던 1개월 전보다 15.4%가 올랐다. 작년 같은 기간에 623원이었던 것에 비해 28.4%가 상승했다. 전남 무안과 함평 등 주요 양파 산지에서 가뭄으로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감자 역시 가격이 오름세다. 이맘때가 수분을 흡수하고, 알이 굵어지는 시점인데 주산지인 충남 당진, 전북 남원 등 남부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생육이 부진했다. 19일 현재 상품 수미 감자 20kg 도매가격은 2만9600원이다. 평년의 2만37원에 비하면 67%나 올랐다.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상품 고구마 100kg 도매가격은 19일 현재 5만200원이다. 평년의 2만7883원에 비해 55%나 상승했다. 소매가격은 1kg당 평균 7665원으로 평년 4509원보다 58.8%가 올랐다.

 

일부 천수답(天水畓·빗물에 의존해 경작하는 논) 농가에서는 모내기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가을 쌀 수확량이 줄어 장기적으로는 쌀 가격도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가뭄이 계속되면서 밭작물의 생육이 부진해 가격 폭등이 잇따르고 있다.

 

 

극심한 가뭄의 원인은 평년보다 이동성 고기압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맘때쯤이면 저기압이 주기적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주면서 비를 뿌렸지만 올해는 달랐다.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에 머물면서 맑은 날이 지속됐다. 통상적으로 고기압 영향 아래서는 덥고 건조한 날씨, 저기압 아래서는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나타난다.

 

19일에는 장마전선이 제주와 남부지방에 걸쳐 비를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할만큼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제주 10.9mm, 부산 36.5mm, 보성 9.5mm 등에 그쳤다.

 

타는 농심을 듬뿍 적셔줄 비는 6월 하순에나 올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달 말부터 내달 상순에서야 전국에 걸쳐 본격적인 장맛비가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맛비는 100∼200mm 가량으로 해갈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그 이전까지 많아야 30mm 정도의 강수량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7월 초에는 평년의 61∼126mm보다 많은 비가 예상된다.

 

 

전국적인 가뭄 탓에 지자체도 초비상이다. 서울시는 ‘가뭄 물주기 대책본부’를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각 자치구의 녹지급수차량 외에 소방차, 도로물청소차, 상수도사업본부의 물차, 민간 급수차 등 모두 499대가 동원된다.

 

충청남도는 관정 등 용수원 개발 자금 133억7500만원을 긴급 투입한다. 농식품부의 용수원 개발 예산 33억7500만원과 도 예비비 50억원, 시·군비 50억원이 포함된 예산이다.

 

현재 충남지역의 931개 저수기 중 고갈된 곳만 115곳이다. 저수량이 30% 이하인 곳이 361곳 등 476곳이 심각한 상태다. 특히 태안과 예산, 홍성, 서산 등 서북부 4개 시·군은 저수율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달 30일까지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농업용수 급수가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경기도는 24억 7800만원의 가뭄 대책비를 긴급 지원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에 긴급 지원된 가뭄 대책비는 화성시 등 가뭄피해지역에 용수원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개발된 긴급 용수는 천수답과 피해를 입은 논에 공급된다.

 

5월 이후부터 경기도는 관정 등 수리시설 3830개소의 용수원을 정비·개발했다. 양수기 4407대, 송수호스 440km의 급수 장비를 총 동원하는 등 가뭄 극복 대책을 추진해왔다.

 

특히 도·시·군, 유관기관 등 50개 기관 250여명으로 구성된 가뭄극복 추진대책 상황실을 지난 14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유경 기자 leeyou@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