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보다 양으로 밀어붙이던 ‘구식 여풍(女風)시대’가 끝났다. 남성 대비 여성의 비율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고 기뻐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다. 사실 공무원 시험에서 직렬에 따라 여성이 합격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다면 여풍의 새로운 평가기준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양보다는 질이다. 이제 관심의 대상은 유리천장을 뚫고 질주하는 고위직 여성들의 현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상청에 부는 여풍이 뜨겁다. 능력이라는 철의 날개를 입고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질주하는 그녀들이 기상청을 바꾸고 있다.
기상청 여성공무원 420명으로 32.3%
기상청의 총 근무인원은 1301명. 이 중 여성인원은 420명으로 32.3%에 이른다. 타 정부기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올해 3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국가공무원인사통계’에 따르면 청 단위 행정기관 중 여성공무원 비율이 30%가 넘는 곳은 18개 청 중 3개 청(국세청, 병무청, 통계청)에 그쳤다.
기상청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10.1%로 조사됐다. 5급 이상 남녀 공무원 총 296명 중 30명이 여성인 것. 10%라는 수치가 낮아 보이지만, 청 단위 정부기관들과 비교하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각 청 인사계에 따르면 5급 이상 여성공무원 수치가 10%를 넘기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극단적으로 소방방재청 총 인원 606명 중 가장 높이 승진한 여성 공무원 직급은 사무관(5급에 해당)이다. 인원도 2명으로 극소수다. 국세청의 5급이상 여성공무원 비율 역시 7.6%로 매우 낮다.
5급 이상 10.1%(30명), 4급(과장급) 이상 11명
기상청에 부는 여풍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과장급에 해당하는 4급 이상 공무원 수치가 독보적이라는 것.
기상청에 근무하는 남·여 포함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68명. 이 중 11명이 여성이다. 16.2%달하는 수치다. 타 공기관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인력 비율이 낮아지는 반면, 기상청은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보다 4급 이상 고위공무원 여성 공무원 비율이 높은 기현상을 보였다.
국가 행정의 큰 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에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는 반증이다. 같은 청 단위 행정기관이지만 기상청보다 288명이 더 근무하고 있는 특허청은 4급이상 고위 여성 공무원 비율이 5.4%에 그쳤다. 전체 인원이 1862명에 달하는 농촌진흥청 역시 과장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이 6.8%에 그쳤다.
기상청 인사계 권태순 과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일괄적으로 인원이 충원되는 타 공기관과는 달리 기상청의 업무 특성 상 과학기술 분야와 기상관련 전공자들의 전문성을 우선 판단기준으로 삼아 인력을 충원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태풍의 눈…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장
기상청에 불고 있는 ‘여풍의 눈’에는 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장이 있다. 그녀는 “기상청에 부는 여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걸 여풍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저 당연한 수치일 뿐이죠.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육사 수석 졸업생이 여성인 시대이고 세계 최고급 호텔의 쉐프며 헤어 디자이너로 남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에 성을 구분하는 자체가 뒤떨어진 생각인 것 같아요. 성을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거죠”
강한 추진력과 카리스마…최영진 응용기상연구과장
작은 체구에 ‘까르르’ 웃는 모습이 마냥 소녀같은 최영진 응용기상연구과장. 하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할 건 다하는 ‘무서운’ 여성 공무원이다. 대포 같은 추진력과 카리스마가 그녀의 가장 큰 무기.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큰 프로젝트도 속성으로 추진해 3~4일만에 끝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업무에 필요하다면 강원도로, 대전으로 전국을 누비는 에너자이저. 한번 고용하거나 파트너로 삼은 사람은 끝까지 믿고 함께 일하는 따뜻한 인사관도 수하 50명의 인력들과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스티브 잡스 제품이 왜 세계 최고겠어요! 입맛이 까다롭고 만족기준도 완벽에 가까울 만큼 높기 때문이죠. 여성들도 스스로의 만족도를 최대치로 올리고 사회생활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장벽들이 많지만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건 그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최고’가 되는 것이거든요."
|
정다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