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의 본고장' 독일에서 기준치 이상의 대기가스를 방출하는 디젤 차량의 도시 진입을 법적으로 막을 길이 열렸다.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27일(현지시간) 슈투트가르트와 뒤셀도르프 시 당국이 대기질을 유지하기 위해 연방 규제와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디젤차의 운행금지를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디젤차 막는 판결에 車업계·소비자 요동
이 같은 조치가 시행으로 이어지면 그동안 디젤차를 중심으로 제품 개발과 생산에 치중해 온 독일 자동차 업계는 치명타를 입을 전망이다.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디젤차를 소유한 운전자들도 규제가 시행되는 도시에 진입할 수 없어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 중고차 가격 하락 등에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번 판결의 중심에선 슈투트가르트 시의 경우에도 지난해부터 디젤차의 도시 진입을 막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디젤차 소유주들의 반발과 저소득층의 부담 가중이라는 비판적 목소리에 한발 물러서 시행하지 않았다.
독일 정부 역시 디젤차 소유주들이 혼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이번 판결이 당장 현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번 판결이 독일의 모든 운전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들과 향후 조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법원의 판결을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니클라스 시너 그린피스 자동차 전문가는 “독일에서만 1만3000명이 디젤 배기가스 때문에 일찍 사망하고 심장병과 폐암, 어린이 천식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로이터를 통해 밝혔다.
독일에선 지난해 대기오염이 기준치를 넘어선 도시가 70여곳에 달한다. 특히 슈투트가르트는 미세먼지에 대한 유럽연합(EU) 기준치를 2006년에 59일을 초과해 독일에서 미세먼지 문제가 가장 심각한 도시로 꼽힌다.
◇세계적 디젤차 퇴출 흐름, 韓도 도심규제 강화
이번 독일 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배기가스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까지 내연기관을 쓰는 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각국 정부의 계획과 함께 아예 도시 운행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독일에서 생기면서, 다른 나라로까지 디젤차의 도시 진입 금지가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7일 이탈리아 로마가 2024년부터 디젤차의 도심 진입 전면 금지를 추진할 뜻을 밝히면서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탰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는 (환경을 위해)신속히 행동해야 한다”며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로마에 앞서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도 2024년부터 파리 도심에서 디젤차의 운행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노후 디젤차 도시 진입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오는 4월부터 서울에 진입하는 화물차에 대한 단속에 나선다. 단속 대상은 지난 2005년 이전에 등록된,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하지 않았거나 엔진 개조 등을 통해 저공해 조치를 하지 않은 2.5톤 이상의 사업용 화물차다. 아울러 오는 2020년부터는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전역에서 노후 디젤차 운행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 올해 노후 디젤차 11만6000대 조기 폐차를 지원하거나 배출가스 저감장치(DPF)를 부착하게 하는 등 집중 관리한다.
각국 규제 강화 흐름에 따라 디젤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디젤차 판매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각각 35%, 9%가량 감소했다. 유럽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각각 10%, 9%, 7% 정도씩 줄어 유럽연합(EU) 27개국 평균으로는 디젤차의 판매 비중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의 디젤차 점유율도 2015년 68.8%, 2016년 58.7%에서 지난해 49%로 2년 사이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디젤차가 금지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자동차업체는 프랑스 푸조와 르노가 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의 리포트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디젤차 비율이 높은 독일 메이커 다임러와 BMW가 각각 38%와 35%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폭스바겐이 26%로 뒤를 이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노재웅 [ripbird@edaily.co.kr] Copyright 이데일리 | 이타임즈 신디케이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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