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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높은 친환경 소재의 옷을 오래도록 입는 의복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SPA 브랜드(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옷을 쉽게 사고 버리는 문화를 조성해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옷만 잘 입어도 환경운동가’ 포럼 발표자로 나온 강동대학 패션디자인과 남후남 교수의 말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지난 16일 ‘패션·의류’ 분야에서의 그린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기후변화 시대의 지속가능한 패션’과 ‘윤리적 패션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포럼에는 남후남 교수와 한세대학 디자인학부 장남경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두 교수는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SPA 브랜드의 환경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Speciality retailer, Private label, Apparel의 첫 글자를 딴 SPA 브랜드는 최신유행을 빠르게 반영해 자체적으로 제작·유통 시키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일컫는다. 소재보다는 디자인을 우선시하고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ZARA, 유니클로, H&M, Forever 21 등이 이에 속한다.

 

남 교수는 “SPA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해 옷을 쉽게 사고 버리는 문화를 조성한다”며 “이런 패션 문화는 기후변화의 주범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최신 유행하는 옷을 사 입으며 ‘나는 경제적인 사람’이라는 착각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원료·정당한 노동력으로 만든 질 높은 옷을 적게 구입해 오래 입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소비자 스스로 자신이 입는 옷이 어떻게 제작·유통된 것인지, 이 옷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자각하는 ‘의식 있는 소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제는 소비자들도 점점 의류 제품의 친환경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기업들도 얼마나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재료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장남경 교수는 소비자들이 옷의 ‘히스토리’를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MADE IN CHINA’에서 CHINA는 봉제가 이뤄진 곳을 의미한다”며 “원단은 어디에서 왔는지, 실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단추는 어떤 과정으로 생산됐는지에 대한 정보를 옷에 기록해 소비자가 자신이 입는 옷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입하는 옷의 양과 종류를 줄이기 위해 다기능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소매를 탈·부착해 길이를 조절하는 등 하나의 옷에 여러 기능을 담으면 그만큼 구입하는 옷이 적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 교수는 “방수·통풍 기능을 높여 오염이 잘 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면, 세탁 시 소모되는 물과 에너지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의류의 개선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장 교수는 현재 친환경 의류 제품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제품에 비해 뒤떨어지는 디자인, 낮은 신뢰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장 교수가 초점집단 면접을 진행한 결과 친환경 의류 제품의 디자인이 ‘스님 옷 같다’고 말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친환경 제품의 소재·제작과정·기능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것도 문제였다. 대부분이 “내가 못 봤으니 안 믿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장 교수는 친환경 옷이 널리 확산되려면 무엇보다도 디자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옷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아름다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는 “친환경 옷을 자선·기부의 느낌으로 구입하면 일회성·단발성 구매에 그치고 만다”며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도 맛이 있어야 계속해서 먹듯이, 아무리 환경에 좋은 옷도 디자인이 예뻐야 입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 교수는 포럼 내내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말로만 생각으로만 친환경 디자인을 해서는 안 된다”며 “진정성 있는 ‘윤리적 패션’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친환경 기업이라고 광고하는 대기업들에게 ‘진정성’은 없고 ‘마케팅’만 있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가 한 대기업에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떤 친환경 활동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기업측은 “‘유기농 면’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어디에서 생산된 유기농 면이냐”고 물었더니 “중국산”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됐다는 것. 장 교수는 “환경보호에 대한 철학 없이 그저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식의 마케팅적 친환경 활동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 발표가 끝난 후 안병옥 기후변화연구소장, 남 교수, 장 교수와 청중들이 토론의 자리를 가졌다
 

이번 포럼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소비자보다 제작자의 입장에 맞춰졌다는 것. 한 여성 청중은 “옷을 잘 만드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옷을 잘 입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옷은 잘만 입으면 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하고, 겨울에 난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따뜻해 무엇보다도 친환경적 아이템이 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을 짚어주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청중은 “현수막 등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의류가 과연 친환경적인 것인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며 “차라리 그냥 폐기하는 것이 에너지·비용 면에서 나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현수막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들은 완전한 친환경 패션이 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작업들은 친환경 패션의 발전에 motivation(동기부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라고 답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