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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기후변화, 피할 수 없다면 적응부터”
권영한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기후변화 심각성 ‘인식’이 급선무”
  2012-05-24 06:09 고서령   
지난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0.74℃ 상승했다. “겨우 0.74도?”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 100배에 달하는 시간인 지난 1만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1℃ 이상 변한 적이 없다.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환경에 대한 무지(無知)는 1만년을 100년으로 단축시킬 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온난화를 불러왔다.
 
우리나라를 놓고 이야기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국 6대 도시의 평균 기온은 지난 100년간 1.7℃나 상승했다. 여름처럼 무더운 봄과 가을, 갈수록 잦아지는 폭우·폭설….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이상기후 현상 몇 가지만 떠올려 봐도, 우리나라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해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자’는 움직임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만큼 중요한 ‘기후변화 적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후변화 적응이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위기대책을 수립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활동이다. 우리나라 기후변화 적응정책의 중심에 있는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KACCC) 권영한(55) 센터장을 만나 ‘기후변화 적응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들어 봤다.
 
“최소 수십년은 과거 배출된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 진행”
 
권 센터장은 “온실가스 감축과 동시에 새로운 기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두 가지, ‘감축’과 ‘적응’이 있습니다. 감축은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기후변화 영향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죠. 반면 적응은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최소 수십년은 과거에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이미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거죠. 우리가 이 현실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앞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기후변화 적응이 시급한 이유죠.”
 
그는 우리의 대응 역량을 초과하는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예전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제방을 더 높게 쌓고, 새로운 폭우대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영향이 심화되면서 폭우의 수준이 예전과 같지 않게 됐습니다.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대응 역량을 키우는 것이 바로 기후변화 적응입니다.”
 
“기후변화 ‘인식’ 제대로 못하면 피해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권 센터장은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폭염·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급증, 말라리아 확산, 식량·물 부족 등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심각한 피해들은 가상이 아닌 우리에게 실제로 닥칠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발생할 기후변화 피해는 시나리오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 193개국이 모여 ‘지구 온도를 2℃ 이상 상승하게 하지 말자’는 기후변화 대응 협의를 했습니다.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2℃ 이상 상승하면 사망률 급증, 식량·물 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협의는 지켜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지구 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으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 이하로 유지돼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벌써 400ppm이 넘었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계획했던 목표 이상으로 온도가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를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나리오에서 예측한 피해보다 훨씬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적응”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기후변화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름철이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을 틀어 놓는 상점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에어컨 희망온도를 20도에 맞춰 놓는 경우가 많죠. 거의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탓입니다.”
 
“국민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조금 덥더라도 참고 에어컨 온도를 25도로 맞추게 될 것입니다. ‘국민들의 정확한 문제 인식’이야 말로 기후변화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 갈수록 빨라지는 기후변화의 속도 - 지난 150년 간 기후변화의 속도(붉은 선)와 최근 25년 간 속도(노란 선) 사이의 급격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가까울수록 기후변화의 속도 그래프의 각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기후변화 취약계층 보호 위한 대책마련 시급”
 
권 센터장은 ‘기후변화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을 ‘기후변화 취약계층’이라고 합니다. 강변이나 해안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홍수, 해일로 인한 피해가 클 수 있기 때문에 취약계층에 해당합니다.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90% 이상은 지하실 등 열악한 환경에 사는 저소득계층입니다. 기후변화 취약성을 평가해 적절한 대응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최소한 5~10년의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의 악영향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는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피해는 전 국민의 피해와 같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10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홍수가 나도 나는 피해 없으니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를 입으면 아파트 10층에 사는 사람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혼란과 우울증, 피해복구비용에 투입되는 세금 등을 생각하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자신이 사는 곳에 관계없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부-연구기관 간 수직적·수평적 연계성 강화가 필요하다”
 
그는 현재 기후변화적응 연구의 한계점으로 ‘상호 연계성 부족’을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기후변화 적응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최근 몇 년간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를 중심으로 기후변화적응대책을 수립해 왔습니다. 환경부, 행정안전부,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등 총 13개 부처가 참여해 건강, 재난/재해, 농업, 산림, 물관리, 생태계, 해양/수산업 등 7개 분야의 대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 영역이 워낙 넓은데다 다양한 기관이 나누어서 하다 보니 부처 간 네트워킹 구축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기후변화적응대책 연구는 중앙정부와 연구기관 간에 연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연구 계획을 수립해 놓았는데 정부에서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거나,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인력이 지원되지 않는 등 수직적 연계성이 약한 실정입니다. 기후변화 적응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 만큼 빠른 협조와 연구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직적 연계성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 간 ‘수평적 연계성’도 강조했다. “연구 분야가 다르다고 해서 각 부처들이 자신의 연구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부처가 ‘기후변화 적응’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놓고 같은 생각을 공유해야 진정한 기후변화 대응책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적응 대책, 중앙정부보다 국민·지자체 중심으로 가야”
 
마지막으로 그는 기후변화적응 대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기후변화적응 대책은 모두 중앙정부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정작 중요한 국민과 민간단체는 빠져 있었죠. 지방자치단체도 정부가 내려 보내는 지침을 따르는 데 급급했습니다.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앞으로는 지자체가 스스로 우리 지역에 필요한 기후변화적응대책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그것을 중심으로 연구와 대책마련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도 그렇고, 지자체도 그렇고 실제로 적응대책을 수립하는 주체는 그들이지 중앙정부가 아닙니다.”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권영한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그의 말대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위기를 가장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권영한 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Cornell Univ.)에서 식물병리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UC버클리대(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6년간 박사 후 연구원(환경미생물학)을 지냈다. 이후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서 건설·개발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환경영향평가’에 열정을 쏟았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KACCC)장을 맡아 기후변화적응 정책 수립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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