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칼럼 > [김상회 칼럼] ‘예상’과 ‘신뢰’

한미 FTA를 추진하고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모두 ‘국익’을 내세운다. 찬성하는 쪽은 ‘국익에 부합한다’ 하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국익에 위배된다’ 한다. ‘국익’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상 모호하기 짝이 없고 소모적이다. 국민은 균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은 또 다른 ‘일부 국민’의 이익에는 반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의 결과는 그 정책의 적용 대상이 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찬반 논란은 불가피하다. ’한미 FTA'의 경우 일부 수출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대신 농축산 분야에 피해가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를 둘러싼 길고도 지루했던 처리과정이 일단락되고도 그 여진이 아직도 계속되는 본질적인 원인은 ‘제로 섬’ 게임의 파이의 크기와 분배를 둘러싼 문제라기 보다는 리더십에 대한 ‘신뢰(trust)’의 문제인 것 같다.

모든 정책의 입안과 집행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상(forecasting)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책에 영향을 받게 되는 대상자들로서는 실현되지 않은 ‘전문적인 예상’에 대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한미 FTA 논란의 핵심사항인 농축산업 피해의 정도나 그에 따른 보상과 지원의 문제, ISD(Investor-State Diopute; 국가 간 소송제도)조항에 따른 영향의 문제 역시 모두 ‘예상’일 뿐이다.

국민들이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상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를 신뢰한다면 ‘농축산업이 붕괴하지 않는다’거나 ‘ISD 조항이 있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예상을 따를 수 있겠지만, 현실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듯하다.

현대사회의 복잡다기화된 관계망이 유지되어 공동체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신뢰’를 현대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소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결여된다면 공동체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에서 리더십과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관계는 더욱 절실하다. 구성원들이 지도자들이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에 따른 예상을 구성원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면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도 불가능하고 어떠한 정책도 실현불가능하게 된다.

사회의 이해관계가 다양해질수록 리더십의 신뢰는 그만큼 더욱 중요해진다. 리더십이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구성원들은 리더십이 제시하는 ‘예상’을 신뢰해야 그것이 ‘4대강 사업’이 되었든 ‘한미 FTA'가 되었든 그를 둘러싼 혼란과 분열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신뢰는 미래에 대한 예상이 쉽지 않을 때 요구된다. 누구든지 쉽게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다면 굳이 예상에 대한 신뢰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의 결과에 대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해 리더십의 신뢰문제까지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Lewis)와 가이거트(Geigert)는 신뢰란 ‘신뢰받는 사람이 단순히 신뢰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trustworthy)뿐만 아니라 상대를 신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를 신뢰함으로써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회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trustful) 상호작용’으로 파악한다.

정부와 지도자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무책임한 예상을 내놓아도 사회적 신뢰관계가 깨어지겠지만, 정부와 지도자가 제시하는 제 아무리 ‘신뢰할만한 예상’도 상대가 절대 믿으려하지 않아도 신뢰관계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신뢰가 붕괴하고 있거나 붕괴했다면 그것은 모두의 책임일 수 있겠지만, 우선은 정부와 지도자의 책임이 더 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예측이나 기상예보 역시 ‘신뢰’가 전제되어야 그에 따른 대책과 대비가 실효성 있게 진행될 것이다. 최근 정부나 많은 소위 ‘권위있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앞 다투어 미구(未久)에 다가올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에 대하여 ‘예상’을 내놓고 그에 대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 비해 우리사회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의 ‘예상’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고, 그 대책에 대해서도 귀 기울이거나 동참하지도 않는 듯하다.

아마도 정부나 권위있는 기관들의 ‘예상’을 썩 미더워(trustful)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국민들이 ‘권위’를 미더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믿음직스러워(trustworthy) 보이지 못했던 ‘권위’의 책임일 것이다.

김상회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한백연구재단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