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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남·32)는 추석연휴가 지난 후부터 무기력감을 느끼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평상시보다 1시간 긴 8시간씩 잠을 자도 하루 종일 머리가 띵하고 졸음이 온다.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초콜릿·믹스커피 등 단 음식이 계속 당긴다. 괜스레 외롭고 우울한 기분마저 들면서 말수까지 줄었다. ‘가을 탄다’는 말로 쉽게 넘겨버릴 수도 있는 K씨의 증상은 ‘계절성 우울증(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의 하나인 ‘가을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가을철이 되면서 K씨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의 10∼20%가 가벼운 계절성 우울증을 겪고 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2주 이상 계속되고, 평소보다 잠과 당분 섭취가 늘어나면 ‘가을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가을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은 ‘일조량 감소’다. 일조량이 줄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거나 가라앉는 것을 조절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부족할 경우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성 폭식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 해가 짧아지고 햇볕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조량이 감소하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멜라토닌’의 증가다.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데, 일조량이 부족하면 낮에도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이 감소하고 멜라토닌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식욕과 잠이 늘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일반 우울증 환자들은 입맛을 잃고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같은 호르몬의 변화로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은 오히려 평소보다 음식을 많이 먹고 잠도 더 많이 자게 된다. 가을증후군 환자들의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가을에 마음이 가라앉고 식욕이 증가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기분이 지나치게 가라앉아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폭식 증상이 나타날 경우 계절성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은 외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뇌의 시상하부 능력이 다소 저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처럼 가을증후군 환자도 남성이 더 많은 것일까. 남성이 가을을 더 잘 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절성 우울증 환자 중에는 여성이 전체의 60~90%로 남성보다 훨씬 많다.

 

햇빛을 받아 몸에서 생성되는 비타민D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가을이 되면서 일조량이 부족해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감소하면 남자들은 갱년기 비슷한 증상을 느끼기도 한다. 갑자기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도 엄습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요인도 있다. 성취를 통해 존재감을 느끼고자 하는 남성들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지난 1년간 자신이 이룬 일들을 돌아보며 자기 평가를 한다. 이때 못다 이룬 일에 대한 자기 비난으로 의기소침해지기 쉽다는 것. 특히 40~50대 중년남성들에게서는 이런 심리적 위기감이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여성 환자가 많은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이 감성적으로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 외에도 우울증을 유발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들에 여성들이 더 많이 노출돼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40~50대 중년 주부들은 가을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계절성 우울증의 예방·완화에 가장 좋은 것은 ‘햇볕’이다. 일조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만큼 하루 30분 정도씩 햇볕을 쬐면서 신체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햇빛을 너무 많이 쬐면 피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적절한 노출은 정신과 신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실내 공간의 조명을 밝게 하거나 창가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대부분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이 되면 자연스레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또는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이 힘들 경우에는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공유하는 것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산책, 자전거 타기, 조깅 등 야외에서 하는 취미활동을 늘리는 것도 일조량을 늘리고 활력을 되찾는 좋은 방법이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