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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로 인식돼 온 원자력의 실제 경제성을 놓고 최근 진실공방이 뜨겁다. 순수 발전 비용 외에 원전 해체 비용, 핵폐기물 처분 비용, 사고발생 위험 비용 등을 계산하면 국내 원전의 숨겨진 비용이 최소 10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한 대기업 연구소에 의해 제기된 것.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즉각 “국내 원전 발전 단가는 해체 비용과 핵폐기물 처분 비용을 포함해도 화석연료보다 싸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최근 잦은 고장, 납품 비리, 위조부품 사용 등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어 국민들이 이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지는 의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드러나지 않는 비용’ 보고서를 지난 1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장우석 연구위원은 국내 원자력 발전 단가에는 원전 해체 비용 23조6000억원(유럽감사원 기준),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 약 72조원(일본 원자력위원회 기준) 등 최소 100조원에 달하는 ‘숨겨진 비용’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원전 해체 비용(9조2000억원),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23조원)과는 각각 약 2.5배, 3배의 격차가 있다. 보고서는 특히 현재 가동중인 원전 23기 중 절반 이상인 12기의 설계수명 만료일이 2030년 이전에 집중돼 있어, 그 해체 비용으로 정부 재정이 압박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지난해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원별 매입단가를 보면 원자력(32.9원/kWh)이 석탄(67.2원/kWh)에 비해 51% 정도 저렴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면서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의 원자력 발전단가 재검증 결과 실제 원자력과 화석연료의 발전 단가는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즉각 “국내 원전의 발전단가는 이미 원전 해체 비용과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원전 발전단가는 낮은 건설비용과 높은 석탄·가스연료비를 고려하면 화석연료보다 크게 낮다”고 반박했다.

 

 

또 한수원 측은 보고서가 사용한 유럽감사원의 해체비용 추정치는 라투아니아에 있는 흑연감속로의 해체비용(1기당 2조2000억원)을 포함한 금액으로, 경수로(1기당 해체비용 6600억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핵폐기물 처분 비용에 대해서는 “2003년 기준 처분 비용을 23조원으로 추정하고 있고, 그 중 6조5000억원(지난 6월 기준)을 납부 또는 적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위조부품 사용 논란을 비롯해 잇따른 원전 고장과 마약 사고, 납품 비리, 뇌물 수수 등 한수원의 총체적 조직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 이같은 주장의 신뢰도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또한 잇따른 고장으로 사고 발생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사고발생 위험 비용’(사고 발생 시 복구비·피해보상비 등)도 발전 단가에 포함시켜 재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일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기존 원전 단가에도 원자력사업자 배상조치액 500억원에 대한 보험료 36억원이 포함돼 있고, 500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5000억원 한도 내에서 사업자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지금 한수원과 정부가 책정하고 있는 사고발생 위험 비용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면서 “(원전사업자들이) 대규모 사고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로 보험료를 높이게 되면 발전단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전사업자들은 사고처리 비용을 지불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두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국장은 “(현재 수준의 사고발생 위험 비용은) 우리는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책정된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듯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은 3만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자랑해 왔지만,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원전 4기에 동시에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이제 확률을 통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원전의 드러나지 않는 비용’ 보고서도 “세계 3대 원전사고(미국 스리마일 섬,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1기당 피해 규모는 약 58조원에 달하지만, 한국은 5000억원의 유한책임 이외에 별도의 비용적립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한국은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 밀도가 좁아 (사고 발생 시) 막대한 인명 피해와 국토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막대한 원전 폐기 비용과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 사고 발생 위험 비용까지 생각하면 더 이상 원자력을 ‘싸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정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력생산량의 30~35%를 담당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단기간에 줄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지금으로선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철용 에너지경제연 연구위원은 “아직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보급에 투자를 확대할수록 경제성 확보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나오는 시점까지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원전의 드러나지 않는 비용’ 보고서는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일정한 데 비해 잠재적 위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우선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오래된 원전은 폐로해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 다음 수요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높여가면 전력공급에 큰 무리 없이 원전의 비중을 줄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이같은 논란을 반영해 원전 발전 단가를 다시 산정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최근 “현실적인 비용 상승 요인을 반영해 원전 해체 비용을 재산정 중이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도 2003년 추정치(23조원)에 물가상승, 원전정책 및 경제환경 변화 등 인상 요인을 고려해 재산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안 소장은 “발전 사업자, 원전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수원과 정부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원전 발전단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