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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이례적 폭염과 열대야로 ‘전기료 폭탄’을 맞은 가구가 많다는 언론보도가 속출하면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에 따라 에너지시민연대와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는 ‘전기요금 누진제 축소냐, 확대냐’를 주제로 19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절약’과 ‘저소득층 보호’ 그리고 ‘산업경쟁력 지원’이란 명분아래 처음 도입됐다. 현행 누진제는 2004년 개정된 것으로 전력사용량을 100kWh단위로 1~6단계까지 구분해 요금을 차등 적용한다. 1~3단계는 전력사용량이 적은 서민층을 위해 원가이하의 낮은 요금을, 4단계 이상은 전력소비 절약 유도를 위해 원가 이상의 판매단가를 적용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모두가 전력요금 체계 개편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누진제와 관련해서는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부만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현행 제도를 유지한 채 현금보조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 강만옥 KEI 선임연구원

 

강만옥 KEI 선임연구원은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가구 당 전기소비량이 증가했음에도 과도한 누진제로 인해 국민이 행복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주택용 누진제를 현행 6단계에서 2~3단계로 축소하고, 누진율도 현행 11.7배에서 2~3배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전기기 보급 확대와 대형화로 300kWh 이상 전기를 소비하는 가정이 과거보다 크게 증가했다”며 “우리나라의 6단계 누진요금은 일본(3단계), 미국(2단계), 영국·프랑스·캐나다(단일요금)에 비해 과도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또 ‘저소득층 보호’라는 누진제 목적과 관련해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1단계(100kWh 이하) 사용고객 중에는 저소득층보다 수득 수준이 높은 국민들이 다수 속해 있다”며 “겨울철 전기난방 사용이 많은 저소득층이 오히려 누진제 피해를 입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택용 누진구간 및 누진율 축소에 따른 전력판매 손실분은 산업용, 일반용, 농사용, 교육용의 대규모 사용자가 부담하는 요금 인상분으로 충당하면 된다”며 “그간 과도한 주택용 누진제 때문에 가정이 희생한 것에 비해 비주택용(산업용, 일반용 등)은 사용자들의 전력 절감 노력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고 역설했다.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장도 “우리나라 주택용 전력수요는 과도한 누진제 때문에 타 부분보다 증가율이 낮다. 그러나 앞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욕구가 늘어나면서 전력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1~3단계는 원가 이하, 4~6단계는 원가 이상을 받는 현행 누진제에 대해 “원가를 벗어나면서까지 수용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산업용, 업무용(일반용)처럼 주택용도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구상에 10배 이상 누진율을 시행하는 나라가 없다. 특히 영국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더 할인해 준다”고 덧붙였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선진국에 없는 누진제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점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복지정책이 잘 돼 있는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기사용량이 2배 늘었는데 요금은 6배 늘었다’는 식의 극단적인 예를 사용하는 건 옳지 않다. 평균적으로 전력 소비량이 얼마나 늘었고, 요금은 얼마나 늘었는지를 계산해 봐야한다”며 “이같은 과장보도는 한국전력이 통계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전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가구당 전기사용량(287.7kWh)은 지난해 8월(262.2kWh)보다 9.7% 증가했다. 홍 소장은 이 증가율을 적용해 1~6단계 구간별 전기요금 증가액을 산출했다. 그는 지난해 8월 각 구간별 중위에 해당하는 전기를 사용한 6가구가 있고, 올해 8월 그 가구들의 전기사용량이 각각 9.7%씩 늘었다고 가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과 올해 8월의 전기요금 격차는 1단계 312원(8.6% 증가), 2단계 1994원(13.9% 증가), 3단계 4835원(15.5% 증가), 4단계 1만104원(17.4% 증가), 5단계 1만9341원(19.7% 증가), 6단계 4만5998원(20.6% 증가)로 나타났다. 이처럼 평균적 수치를 봤을 때 ‘전기료 폭탄’은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 전체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해석이다.

 

홍 소장은 “한전이 누진제 완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전기요금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불만을 누진제 탓으로 돌리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며 “누진제 완화로 저소득층을 희생하는 대신,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고소득층의 비판을 피해가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한전이 내놓은 3단계·3배율 누진제 완화론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현행 누진제에서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1~3단계의 전기요금은 9.8~50.9% 증가하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4~6단계는 6.3~30.3%까지 감소한다”며 “저소득층은 전력 과소비 계층과 무관한 만큼 누진제를 축소 또는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은영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은 “누진제가 에너지절약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맞지만, 현행 누진제는 실효성과 형평성에서 상당부분 벗어나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획처장은 “최근 1,2인 가구가 크게 늘면서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계층과 저소득층이 일치하지 않게 됐다.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음에도 가구 수가 적어서 누진제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저소득층 지원을 모든 소비자 대상 가격 체계로 하는 것보다 별도로 하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지적했다.

 

또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지만, 일반적 소비자에 대한 복지도 중요하다”며 “소비자들이 에너지절약과 저소득층 보호라는 취지에 크게 반대하고 있지 않는 만큼, 그런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누진 정도·방식을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누진제 도입의 목적인 ‘에너지 절약’과 ‘저소득층 보조’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진제를 축소하거나 폐지해서는 안 된다”며 “그 두 가지 목적을 그대로 남겨둔 채 일부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도시가스 보급률이 전국 평균 74%인데, 산동네·달동네에 많이 사는 저소득층은 도시가스 보급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비교적 값이 싼 전기로 겨울철 난방을 하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반영되지 않은 현행 누진제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또 “저소득층 가구들은 (단열이 안 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할 수밖에 없는 낡은 주택에 살고 있다”며 “주택효율성 제고 지원 사업부터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한전이 제시하고 있는) 누진제 개편안을 적용하면 1단계 요금인상률은 매우 높고, 6단계는 오히려 요금이 줄어든다”며 “이는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해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기요금을 전체적으로 인상해야 할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저소득층 보호’라는 좋은 취지가 있는 누진제를 없애지 말고, 아래쪽(1~3단계)에는 더 후하게 혜택을 주고 위쪽(4~6단계)에 인상분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누진제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전반에 문제가 있는데, 올여름이 지나면서 누진제만 갑자기 부각됐다”며 “문제를 급하게 처리하려 하다가는 진짜 풀어야 할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전기요금 전반에 대한 개편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