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경영 > 날씨정책 > ‘빗물 세금’ 아닌 ‘빗물 하수도 이용료’

박주양 대한상하수도학회장은 소개사를 통해 “빗물세 도입의 목적은 세제 확충이 아닌 세제 형평성 확립”이라며 “원가대비 50%에도 못 미치는 하수도 요금을 현실화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투수면적을 반으로 줄이면 침수피해 방지는 물론 여름 열대야도 사라지고 지하수도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獨, 빗물세에 ‘원인자 부담원칙’ 적용…빗물유출 줄이면 인센티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호 박사는 “독일은 1970년대 초부터 빗물관리 서비스에 대한 공평한 가격구조를 논의해 왔으며 옥상녹화, 벽면녹화, 투수성포장 등 빗물유출을 줄이기 위한 ‘그린인프라’ 조성을 유도해 왔다”고 독일의 빗물세 정책을 소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의 빗물세 제도는 각 가정마다 개별 부지에서 발생한 빗물유출량을 산정해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IPAs·Individual Pacel Assessments)이다. 진입로 포장, 옥상녹화 설치 등은 해당부지에서 유출되는 빗물의 양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건물주는 그린인프라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빗물유출량을 줄일 수 있고, 이 경우 경제적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원인자 부담원칙’을 적용해 불투수면을 늘릴수록 요금을 부과하고, 불투수면을 줄일수록 요금을 절감해 준다는 것이다.

독일은 2000년부터 IPAs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 현재 베를린 등 10개 도시에서 빗물요금을 받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도시들은 하수도요금을 오수요금과 우수(빗물배출)요금으로 분리해 산정한다. 오수요금은 상수도 사용량을 기준으로, 우수요금은 불투수면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상수도 사용량만을 기준으로 하수도비용을 통합해 산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빗물관리비용은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독일식 빗물요금제를 적용하면 강우 관리는 물론 폭염, 지하수 관리까지 이뤄져 물 순환·열 순환이 온전한 쾌적한 도시를 조성할 수 있다”며 “(빗물요금제는) 단순히 하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도시 안전을 높이는 도시계획적 차원의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하수도요금 현실화’ 위해 독일식 요금제 도입 필요”

빗물도시연구센터 권경호 소장은 “독일식 하수도요금 산정법(오수·우수를 분리해 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공동주택 거주 시민은 오히려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경우 물 사용량은 많지만 1인당 불투수면적은 작기 때문에 빗물배출요금의 개인 부담이 적다. 반면 물류, 판매 등 상업 업무단지 소유자들은 물 사용량은 적지만 불투수면적은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는 것. 이 경우 건물 소유주들은 빗물관리 시설을 설치해 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권 소장은 “상업 업무단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빗물요금제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요금부과 원칙 변화”라고 주장했다.

권 소장은 또 ‘하수도 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0년 하수도 재정과 사용료 현황’을 보면 전체 세입에서 하수도 사용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19%에 불과하지만, 세출에서 하수처리시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46%에 달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하수도 요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재원을 끌어다가 하수도 관리 비용으로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도 과거에는 서울시처럼 상수 사용량에 비례해 하수도 요금을 산정하는 ‘통합산정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1972년 독일 연방행정법원이 ‘상수도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수도 요금을 산정하는 것은 빗물배출 비용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을 경우(전체 비용의 12% 이하)에 한해서만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현재의 ‘분리산정법(오수와 우수 요금을 따로 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시민에 침수피해 책임 지울 생각 전혀 없다”

김학진 서울시 물재생계획과 과장은 “독일에서는 ‘빗물 세금’이 아니라 ‘빗물 요금’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독일 헷센주 수자원 관리법에는 ‘빗물은 그것이 내린 장소에서 처리 또는 이용되어야 하며, 물관리적 측면에서 중대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빗물은 그 장소에서 침투시켜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다. 독일은 이러한 법 조항에 근거해 분리산정법을 도입했다. 즉, 비가 내린 그 장소에서 빗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밖으로 배출할 경우 하수도를 사용하게 되므로, 빗물 배출량에 하수도 사용 요금을 지불하게 했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우리 국민들은 빗물처리에 대해 ‘공공 서비스’라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독일과 같은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빗물세 도입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가면서 ‘서울시가 침수피해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법적으로 침수피해에 대한 책임은 서울시에 있으므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먼저 하수도요금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전환부터”

이어진 토론에서 대부분 패널들은 기후변화 적응 차원에서의 빗물세 도입 논의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 방식과 관련해서는 하수도요금 현실화, 인센티브제 등 비용 산정 방식, 빗물세 필요성에 대한 시민 홍보, 빗물저류시설 건축 비용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을 내 놨다.

최태용 한국상하수도협회 교육원장은 “빗물 요금제에 ‘세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시민으로부터 굉장한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시민에게 우리가 쓰고 버리는 것에 대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자신이 하수도요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며 “추후 요금을 재편한다고 할 때에는 시민들에게 하수도요금을 왜 내는지, 하수도요금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해 알리는 활동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인환 단국대 교수는 “시민들을 설득하려면 우선 (빗물처리 책임 소재 등)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의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 줘야 할 것”이라며 “6~8월에 비가 집중되는 우리나라에서 (빗물세는)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지만, 비용부담 방식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학계, 정부가 같이 힘을 합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수 녹색미래 사무총장은 “빗물세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도시물순환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며 “그러나 60% 정도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서울시에서 시민들이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그러면서 “불투수면적을 줄이자는 논의 그 자체로는 상당히 좋은 시발점이다. 그러나 빗물세 도입에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빗물세 도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피력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