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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6일이나 지났지만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에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가 지났음에도 이토록 추운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봄을 알리는 절기는 아직 5번이나 더 남았다”고.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우리나라의 24절기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 여섯 절기는 모두 ‘봄이 왔음’을 의미한다. 이들 절기의 의미를 알면 진짜 봄이 언제 오는지 알 수 있다.

 

‘만물의 시작’을 의미하는 봄은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계절이다. 옛 사람들은 봄의 각 절기마다 여러 의례와 풍속을 행하고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 봄을 알리는 여섯 절기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보통 양력 2월 4일경이다. 입춘은 새해 첫 절기이므로 여러 의례가 행해졌다. 예부터 입춘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기복적 행사로 입춘축(立春祝)을 붙였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해 밤중에 붙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토우가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 하여 입춘이면 토우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았다.

 

서울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보아 뿌리가 많이 돋아 있으면 풍년, 적게 돋아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제주도에서는 집안과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체를 엎어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들어보면 곡식 한 알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쁜 것을 ‘입춘치’라 한다. ‘치’는 보름·그믐 등의 뒤에 붙어 그 날 무렵에 날씨가 나빠짐을 의미하는 접미사다. 선조들은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첫날인 입춘에 입춘치가 있으면 농사에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고 믿었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만 된다고 해 특히 조심했다.

 

관련 속담도 다양하다.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경우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고 말한다. 입춘 무렵에는 반드시 추위가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도 있다. 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고 한다.

 

양력 2월 19일경인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가 되는 때’라는 의미다. 이 무렵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우수가 지나면 추운 날씨가 제법 누그러진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은 ‘슬슬 녹아 없어진다’는 뜻으로 우수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

양력 3월 5일 무렵이다. 경칩이 되면 겨울철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면서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기온은 날마다 상승해 마침내 본격적 봄을 맞이하게 된다. ‘경칩(驚蟄)’은 겨울잠 자던 벌레들이 놀라 땅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옛사람들은 경칩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옛날 농촌에서는 경칩날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에서 개구리 또는 도롱뇽의 알을 건져 먹으며 몸의 건강을 기원했다. 이날 보리 싹의 성장을 보고 그 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했다.

 

고로쇠나무를 베어 수액을 마시는 풍속도 행해졌다. 다른 지역보다 수액이 먼저 오르는 남부지방은 첫 수액을 마시며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했다. 고로쇠 수액은 경칩이 지나서는 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약효가 적다고 전해진다.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부는 등 기후가 나쁘면 좋은 수액이 나오지 않고 날이 맑아야만 약효가 있다.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 농사를 준비하는 절기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이 있듯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튼다.

 

[춘분, 이억영]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는 날이다. 양력 3월 21일 경. 이 날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 빛이 남아 있어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1년 중 농사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기온이 급격히 오르며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과거에는 춘분날의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했다. 이날은 해가 보이지 않고 흐린 날씨가 좋다. 하늘이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믿었다. 해가 뜰 때 정동쪽에 푸른 구름의 기운이 있으면 보리 풍년이 들 것으로 예측했다. 동풍이 불 경우에도 보리 풍년이 들어 보리값이 내리고,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 것이라 생각했다. 북풍이 불 경우 쌀이 귀해질 것이라 믿었다.

 

하늘이 맑아지는 날이다. 양력 4월 5일경인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다. 농촌에서는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도 있다.

 

청명은 농사에 매우 중요한 절기다. 때문에 날씨와 관련된 속신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된다고 점쳤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믿었다.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날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날은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등을 해도 좋다고 믿었다. 

 

봄의 마지막 절기로 양력 4월 20일 경이다. 곡우는 봄비(雨)가 내려 곡식(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이 무렵 본격적 농사철이 시작된다. 때문에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 등의 농사 관련 속담이 다양하다.

 

곡우가 지나면 봄나물이 뻣뻣해져 먹기 힘들기 때문에 이날 나물을 해먹는 풍습이 있다. 인천·전북 순창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날 비가 오면 가뭄이 든다고 여겼다. 반면 경기도 포천에서는 곡우에 비가 많이 오면 그 해 농사가 좋고 비가 적게 오면 가물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자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