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1 16:42:27

[반기성의 날씨칼럼] 무더위의 굴욕, 십자군 전쟁

 
7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혹한의 기후가 유럽을 지배한 후 10세기에 들어오면서 온난기가 찾아왔다. 온난한 기후는 사람들의 생활을 여유 있게 만들었다. 풍요한 시대가 닥치면서 사람들은 신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높이 치솟은 고딕 성당을 짓고, 성지순례를 통해 신께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그 당시 중동지역을 통일한 셀주크튀르크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성지순례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이슬람에서는 명장 살라딘이 나타나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그는 갈릴리 호수 근처의 하틴 전투에서 예루살렘 주둔 십자군을 전멸시켰다. 하틴 전투는 1187년 7월 4일 예루살렘 왕국의 십자군과 이슬람의 살라딘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전투가 벌어진 곳은 현재의 이스라엘 갈릴리의 티베리아스 근처로 ‘하틴의 뿔’이라 불리는 2개의 산 중간 지역으로 이 전투에서 살라딘은 날씨를 이용해 대승리를 거뒀다.
 
이날 새벽 이슬람군은 연기를 피워 십자군의 시야를 가렸고 보강된 병력으로 십자군을 겹겹으로 포위했다. 십자군은 전날의 무리한 행군에다가 물이 공급되지 못하면서 심한 갈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때를 기다려 온 이슬람군은 십자군을 포위한 후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아래 강철 갑옷을 두른 십자군의 행렬은 계속 느려졌다. 살라딘의 경기병들은 쉴 새 없이 십자군을 기습했고 십자군의 병력들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원거리에서 쏘아대는 이슬람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대열이 무너지면 곧 이슬람 중장기병의 먹이가 됐다. 이슬람은 십자군의 후위를 계속 조여 왔다. 투란으로 후퇴하려는 십자군의 퇴로도 차단했다.
 
이때 십자군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하틴 전투에서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은 “왜 신이 주관하는 전쟁에서 이슬람군이 수도 없이 패했는가? 우리는 더운 날씨에 준비해야 하며 물을 확보해야만 한다. 날씨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전투는 하지 않는다”면서 철저히 날씨를 활용했다.
 
이처럼 십자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살라딘은 더위를 이용해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승의 전력을 세웠다. 그는 뛰어난 전술가이기도 했지만 날씨를 전쟁에 가장 잘 활용한 장군이기도 했다. 건기에, 그것도 가장 더운 한낮에 공격을 감행할 것, 물을 충분히 확보할 것, 태양을 등지고 진을 칠 것, 무장을 가벼이 할 것, 전장에 나오기 전 궁기병으로 하여금 게릴라전으로 적을 지치게 할 것.
 
한낮의 열기 속에서 살라딘이 지휘하는 이슬람군의 최초 공격이 감행됐다. 이슬람군이 태양을 등지고 진을 쳤으므로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십자군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은 완전무장을 했으며 물마저 동이나버렸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고 열파에 지친 십자군은 결집력을 잃고 말았다. 십자군이 그토록 중시했던 밀집대형은 무너졌다. 후미 경호대와 대부분의 병력이 적의 궁수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십자군은 너무나 허무하게 전멸했다. 이후 이스라엘 지역은 영원히 이슬람교도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만다.
 
전투가 벌어졌던 갈릴리 지역의 날씨를 살펴보면 이 지역은 6월에서 9월까지가 건기철로 비가 한 방울로 오지 않는다. 낮 최고기온은 섭씨 45도 전후까지 올라가며, 상대습도 또한 평균 65%로 높다. 이러한 살인적 무더위 속에서 십자군의 중장기병은 방어용 갑옷과 사슬갑옷, 쇠 미늘, 투구 등으로 중무장했다. 이에 반해 이슬람군은 가볍게 무장했고 활과 작은 방패와 짧은 창만을 소지했다. 무엇보다 더위에 적응이 된 그들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는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날씨를 아군에 가장 유리하게 이용했던 뛰어난 전략가의 모습은 현대전에서도 지휘관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wxbahn@kweath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