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 와인 생산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가포도의 맛을 좌우하는 일조량과 기온, 강우량에 영향을 미쳐 세계의 와인 재배 지도를 바꾸고 와인의 품질도 저하시킨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타임즈는 스탠포드대학교 연구결과를 인용해 향후 30년 캘리포니아 고급 포도농장이 50%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 규모는 연간 약 165억달러로 매년 생산되는 와인의 양만 500만배럴(약 1892만7058리터)에 달한다. 미국 전체 포도주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양이다.

 

스탠포드대학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내 와인 주산지인 나파, 산타바바라 등의 지역은 포도 재배기간 동안 35℃ 이상의 더운 날씨가 10일 이상 늘어난다는 것.

 

피노 누아, 까베르네 쇼비뇽 등의 포도품종은 더운 날씨가 30일 미만이면서 평균 온도 20℃ 정도인 곳에서 재배된다. 보통 연평균 기온 12℃~22℃ 사이의 지역에서 재배 가능하다.

 

연구 결과처럼 더운 날씨가 늘어나면 포도의 페놀 성분이 숙성하기 전에 당도가 증가한다. 기온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당도와 산도가 즉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독일 등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 ‘알자스 리슬링’의 경우 지난 30년 동안 평균 알콜 도수가 2도 상승했고 맛도 달콤해졌다.

 

세계적 와인 양조 컨설턴트인 리처드 스마트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와인 품질 저하를 우려했다. 칠레 와인 전문지 ‘벤디미아’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유럽의 전통적 와인 산지들이 기후변화 현상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리처드 박사는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로 꼽히는 프랑스 보르도를 예로 들며 “20년 후에는 보르도 지방에서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품종 등을 재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까지 폈다.

 

 

서던오리건주립대학(Southern Oregon State University)의 그레고리 존스(Gregory Jones) 교수와 독일 가이젠하임대학(Geisenheim University)의 한스 슐츠(Hans Schultz) 교수는 세계 주요 27개 와인생산 지역의 기후 변화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1950년에서 2000년까지 유럽 내 평균 기온이 1.7℃ 상승했다. 1948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서부의 포도 재배 지역은 평균 2.7℃ 상승했다. 대규모 와인 생산지인 나파 지역은 전세계 평균 1.3℃보다 높은 1.6℃ 올랐다.

 

포도 재배는 기온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온 변화가 적은 곳에서 좋은 품질의 포도가 생산된다. 생산자들이 기온 변화가 적은 바다나 강, 호수 등지를 포도밭으로 선호하는 이유다. 해가 갈수록 기온의 편차가 큰 것도 와인 품질 저하가 우려되는 요인 중 하나다.

 

한스 슐츠 교수는 “현재의 추세라면 앞으로 50년 이내에 포도 재배 지역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지역에서 포도재배가 가능해지고, 재배하기 힘들었던 곳에서 포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추운 캐나다에서도 온화한 날씨에서 자라는 까베르네 쇼비뇽을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서부 일부 지역은 너무 더워져 재배 지역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평균 기온이 올라 특정 와인을 생산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아이스 와인은 영하 10℃ 안팎일 때 언 포도를 수확해 만든다. 얼어 있는 포도를 수확해 녹기 전에 만드는 와인으로 풍미가 좋고 당도와 산도가 높다.

 

그러나 올 겨울 독일 모젤(Mosel) 지역의 기온은 평균 영상 8℃ 이상을 기록했다. 영하 16℃ 정도였던 작년에 비해 25℃ 이상 높았다.

 

독일와인연구소(German Wine Institute)의 에른스트 뷔셔(Ernst Büscher) 대변인은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따뜻해 아이스와인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은 이상고온 현상으로 아이스 와인용 포도가 완전히 얼지 못해 썩고 있는 상황. 앞으로도 춥지 않을 것으로 예보돼 올해 아이스 와인용 포도 수확 자체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 생산업자들은 이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보르도 샤또 마고(Chateau Margaux)의 코린느 멘젤로풀로스(Corinne Mentzelopoulos) 대표는 “지구 온난화가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다”며 “지난 10여년 동안 최고 수준의 빈티지(특별히 잘 된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들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따뜻한 기후 덕분에 포도가 충분히 익은 후 수확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982년 이래 최상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샤또 꼬스 데스뚜르넬(Chateau Cos d'Estournel)의 책임자 브뤼노 프라(Bruno Prats)는 “기후변화가 문제지만 메를로 포도 대신 다른 품종으로 대체하는 등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다”고 말했다.

 

와인 컨설턴트 미셀 롤랑(Michel Rolland)은 “소비자들은 온난화로 당과 탄닌이 많이 함유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오히려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유경 기자 leeyou@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