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해도 전주비빔밥의 생명은 콩나물, 무생채, 시금치, 고사리 등 오방색(흰색·빨간색·노란색·초록색·검은색) 나물이다. 그런데 이 나물들 대신 노란·빨간색의 파프리카와 초록색의 피망이 들어간 전주비빔밥, 상상이나 되는가.
지금부터 38년 후인 2050년이 되면 전주비빔밥의 색깔을 맞추기 위해 중남미가 원산지인 뻣뻣한 파프리카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8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포럼 발표자로 나온 이영은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에 의해 나왔다. ‘식탁에 부는 기후변화의 바람’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기후변화가 우리 농업과 식문화에 가져올 변화’와 ‘농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 교수는 “기온이 2.5도 상승하면 생태계는 100km 북상한다”며 “일본 오키나와에 가야 먹을 수 있었던 ‘쓴 오이’를 우리 땅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되는 등 우리나라 재배작물의 아열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기존의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렵게 돼 우리의 식문화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격인 ‘전주비빔밥’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30여 가지 재료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2050년이 되면 비빔밥에 들어가는 채소의 색깔을 맞추기 위해 뻣뻣한 파프리카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식문화는 의복문화·주거문화와 달리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기후변화가 우리의 식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거나 초가집·한옥에 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고려시대에 먹던 채소(오이, 가지 등)와 조미료(참기름, 초)를 지금도 먹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기후변화로부터 우리 식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환경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고기보다 채소 섭취를 늘리고 수입 과일 대신 지역의 제철 과일을 먹는 등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갖도록 돕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g 온실토마토 한 개 생산에 340㎖의 석유 사용”
이날 포럼의 또 다른 발표자인 이근행 한살림연합 교육연수부장은 “기후변화도 농업에 영향을 미치지만, 농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농업은 과도한 화학비료·살충제 사용, 비닐하우스 등을 이용한 인공열 가온(加溫), 저장·운송 과정 등 상당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며 현재의 농업 방식이 기후변화의 한 원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00g 온실토마토 한 개를 생산하는데 340㎖의 석유가 사용되는 셈”이라며 “현대의 농업은 석유 위에 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먹거리를 먹는 이유는 ‘생명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인데, 우리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10정도의 에너지를 써서 1.4 정도의 생명에너지만을 얻고 있다”며 “현재 먹거리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로컬푸드(local foo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먹거리의 75%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푸드마일(food mile·먹을거리가 생산된 곳에서 소비된 곳까지의 거리)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먹거리 체계를 대안적·지역적 방식으로 바꿔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TIP 로컬푸드란…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를 최대한 단축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유통구조를 없앤 농산물을 의미한다. 로컬푸드 운동은 자신이 먹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에 대해 인식함으로써 식품의 안전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대안적 농업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요커’들의 음식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생활협동조합, 농산물 직거래, 농민 장터, 지역급식운동 등을 통해 로컬푸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식탁에 부는 기후변화의 바람’ 포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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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