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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21세기 글로벌 지식사회의 경쟁력 원천은 ‘창의’…기초과학은 그 잣대”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2012-10-26 14:26 정연화   

“일본 정부는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연구·개발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아래로 낮추지 않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을 기초과학분야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교토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iPS 세포연구소장이 “대지진과 불황 속에서도 50억엔(한화 약 711억원)을 지원 받았다”며 “내가 아니라 일본이 노벨상을 탄 것”이라고 한 수상 소감은 우리가 곱씹어봐야 대목입니다. 이같은 지원 속에서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모두 16명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정부와 사회에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기초과학 전문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오세정(59)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과학이 눈부신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기초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 보기 위해 최근 오 원장을 만났다.
 
-기초과학이 왜 중요한가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선진국 기술을 모방·변형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산업경쟁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을 따라가는 전략으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선진국과의 특허권 분쟁은 점점 심해지고 후발개발도상국(이하 후발국)들은 급속히 뒤따라와 우리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선진국과의 특허분쟁을 해소하고 후발국과의 격차를 분명히 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유 원천기술을 개발하려면 그 기본이 되는 기초과학 육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됩니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남이 안 해본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어진 새로운 지식과 통찰력으로 우리 고유의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처럼 기초과학 육성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는 대한민국을 보다 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기초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기초과학 분야의 중요한 업적은 주로 논문으로 발표되며 당장 실용화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성과가 곧바로 사회를 윤택하게 하거나 국력 신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창의(創意)의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글로벌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은 개인의 창의력을 얼마나 잘 북돋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성공사례는 이런 점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기초과학 발전은 그 나라를 창의 국가로 거듭나게 만들어주며 이는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됩니다. 때문에 기초과학은 중요하며 기초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현주소는 어떠합니까.
“기초과학분야의 선진 연구소로 흔히 일본의 이화연구소(RIKEN)와 독일의 막스플랑크를 꼽습니다. 이 연구소들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했던 나라들에 있습니다. 일본의 이화연구소는 1917년, 독일의 막스프랑크(1948년 설립)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과학연구회는 1911년에 각각 설립됐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기초과학연구원이 세워졌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약 100년 늦은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정부와 사회 전반에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대한민국도 기초과학을 통한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벨상은 그 나라의 기초과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연구의 자율성과 연속성을 보장하는 연구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야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장기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장으로 선정되면 10년 동안 연구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연구단 운영에 자율성을 보장합니다. 이는 한국 연구생태계에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이같은 연구 환경이 한국 연구 환경 전체로 확산·정착되길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더불어 연구자들의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하지 않은 연구, 미개척 분야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선진기술을 모방·변형하는 추격형 연구형태를 버리고 글로벌 선도형 연구형태를 취해 우리나라도 기초과학분야 선진국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해 줄 것 입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 확보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수한 기초과학 연구자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우선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브레인 리턴(Brain Return) 500’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 외국에 있는 우수한 과학자 500명을 영입하는 사업으로 석학 과학자를 비롯해 중견, 신진 과학자들이 한국으로 오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도 나설 예정입니다. 이는 연구단에 참여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세계적 석학인 단장을 중심으로 해서 중견과학자인 그룹리더 등으로부터 연구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학위 이수과정을 통해 학생 연구원들이 연구현장에서 교육을 받아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원장님도 기초과학(물리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그간 기초과학분야 연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 주세요.
“1984년 모교인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모트(Mott)의 절연체 이론에 한계가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 한국과학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논문이 연구자에서 과학행정가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어요. 미국 물리학회에 논문을 냈는데 심사위원이 장문의 거절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섭렵한 이런저런 기초 논문을 다 읽어보라는 내용이었죠. 그때 저는 ‘한국이라고 무시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사위원이 나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반박 편지를 썼고 결국 다른 심사위원이 심사를 해 논문이 통과됐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국 과학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잘해도 인정을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외국 학회에 한국대표로 나가 우리나라를 알리고 정부의 각종 자문기구에서 과학정책을 바로잡는 일을 벌이게 된 거에요.”
 
-기초과학의 미래 인재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초과학은 ‘창의성’을 특히 중시하는 분야입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사물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서죠. 또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백열전구에 적합한 필라멘트를 찾기 위해 1만번 이상 실험을 했습니다. 새로운 분야, 남이 하지 않은 연구를 하면 중간 중간 실패의 쓴맛을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정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창의적 사고로 인내하며 연구를 지속한다면 좋은 성과는 물론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정연화 기자 lotusflower@onkweath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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