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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놓이기 전 숲의 원래 주인인 동물들을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상돈(52)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의 요망사항이다. 그는 국내 ‘로드킬’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차도에 갑자기 뛰어든 야생동물을 들이받는 이른바 ‘로드킬’ 사고가 국내에서도 한해 5000건을 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그나마 동물 사체를 수거한 경우에 해당하는 수치다. 흔적이나 사체조차 찾지 못하고 사라진 동물이나 파충류, 양서류 등을 더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로드킬은 당하는 동물들도 문제지만 이들을 들이받은 자동차의 경우 2차 교통사고로 이어질 위험 또한 크다. 국내에서 로드킬 사고건수는 공개되지만 이로 인한 교통사고 및 인명피해 통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
로드킬로 인한 사고 및 위험과 관련, 이상돈 교수를 만나 그 현황과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 교수는 “현재 로드킬 방지를 위해 취해지는 방법은 가드레일을 높이거나 철조망 등을 설치해 야생동물의 차도 진입을 막는 정도가 고작”이라며 “도로 건설로 생태공간을 뺏긴 야생동물 보호 측면에서 접근해 이동로 확보를 위한 생태통로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생태통로 조성이 법제화 되어 있지 않고 권고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 이 교수는 “환경부와 국토부가 2010년 각각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과 친환경적인 도로건설 지침’을 만들었지만 이는 단순한 지침 성격이어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관리지침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관련 연구 역시 미비하고 이미 조성된 생태통로들은 주먹구구식 설치와 허술한 모니터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전국의 생태통로는 총 58개소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고속도로로 인해 길이 막힌 야생동물을 위한 생명의 길이 전국에 고작 58개 뿐이다. 이 교수는 “기존에 생태 통로들은 본연의 임무를 잃은 지 오래됐다”며 “지역 사람들은 마을을 넘어가기 위해 지나다니고 심지어 경운기까지 통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도로는 편리함과 기능 부분만을 고려하고 환경적인 요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더 이상 도로건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거나 훼손 또는 파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야생 동·식물의 이동을 돕고자 펜스, 이동통로 등 인공구조물과 식생 등의 생태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드킬과 관련된 전문인력 확충과 정부 지원 시급
로드킬은 단순히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과 차량의 충돌은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로드킬로 인해 연간 200여명이 사망하고 2만9000여명이 부상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수리비용만 28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독일은 아우토반을 비롯한 주요 도로에서 연간 약 2만건의 사고로 40여명이 사망하고 3500명 가량이 부상을 입는다. 스위스도 한해 7500여건의 사고가 발생해 이 가운데 1~2%는 사망이나 부상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역시 한 해 5000여건의 로드킬이 발생하지만 아직까지 교통사고와 인명피해에 대한 공식집계는 없다. 도로공사 등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관련 연구 역시 미비하다. 이 교수는 “국내에는 로드킬과 관련한 논문이나 자료가 많지 않아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해외 논문과 관련 부처에 내용을 참고해 몇몇 전문가들만이 힘들게 진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로드킬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문성이 부족한 일용직 근무자들이 도로 청소를 위해 나갔다가 조사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 마련을 위한 근본적인 데이터 구축이 힘들다”고 연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도로공사의 2004~2008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선, 중부선, 호남선 등은 물론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서해안선에서도 1600건이 넘는 로드킬이 발생했다. 이 교수는 “이는 아직까지 도로를 건설하면서 로드킬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로드킬과 관련된 전문인력 확충과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고라니가 58%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어서 너구리(28%), 토끼(9%) 순이었다. 이 교수는 “고라니를 비롯한 중소형 포유류의 로드킬 사고율이 95%에 달해 사고 시 인명 피해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로드킬, 생물 다양성까지 위협
이 교수가 2007~2011년 중앙선에서 일어난 로드킬을 분석한 결과 1997년에 비해 출현 종수는 12종에서 6종으로 줄었다. 반면 로드킬 개체 수는 825마리에서 1738마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는 “로드킬을 당하는 야생동물이 늘어나는 원인은 상위포식자가 없는 상태에서 개체 수는 증가하는데 택지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훼손됐기 때문”이라며 “경쟁에서 밀린 동물이 도로나 주택가로 나오면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좁은 서식공간은 생태계 다양성마저 파괴하고 있다. 다수를 차지한 동물종이 점차 세력을 확대해 다른 종을 밀어내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도로 실시설계 추진절차를 봐도 로드킬 방지를 위한 생태통로 조성 방안 마련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문제”라며 “동·식물 조사 시 멸종위기종 유무만 확인할 뿐 도로건설로 인해 생태계 단절 등을 밝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생태통로 문제 많아…정부·학계 개선책 찾기 협력
국내의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1998년 지리산 시암재에 터널형 이동통로가 설치된 것이 최초다. 노루, 멧돼지, 고슴도치 등을 위해 만든 폭 6m, 높이 5m, 길이 12m의 이동통로는 최근 모니터링 평가 및 유도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외에도 국토부와 환경부가 설치한 생태통로에는 토양과 식생의 정착발달이 미흡하고 급경사, 배수로 내 탈출구 미설치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특히 유도시설이 없고 외래수종을 식재하는 등의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키지 않은 생태통로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니터링과 평가시스템이 없어 잘못된 형태의 생태통로를 반복해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학계와 공동 연구를 통해 다양한 생태통로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 교수의 생태통로 관련 특허를 시범사업 구역에 적용하기로 했다.
그는 로드킬 방지를 위한 관련 특허만 2개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이 교수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과 함께 ‘고속도로 주변 동물이동통로 조성 및 복원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시범사업 구역 동물 이동통로에서 인공먹이 시설로 야생동물의 접근을 유도한 뒤 무인카메라를 통해 동물들의 이동 현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그는 “효율적인 먹이 제공을 위한 장치 개발과 CCTV 모니터링의 기반이 성공적으로 마련되면 다른 지역에 대한 적용방안도 수립 될 것”이라며 “사업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들이 로드킬의 중요성에 주목한다면 점차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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