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서부 등 주요 곡물생산 지역에서 발생한 가뭄으로 2007~2008년 당시의 식량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돼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에그플레이션이란 농업을 뜻하는 영어 ‘에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일반 물가 상승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미 농무부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56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미국 대륙의 55%가 심각한 가뭄 상태를 경험했다. 특히 옥수수와 대두(콩) 생산액의 75%, 쇠고기 생산액의 65%를 차지하는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뭄이 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곡물 자급률이 30% 미만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부족한 70%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 그대로 타격을 입게 된다. 식량 부족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부 김용택 선임연구위원을 만나 우리나라 식량 문제의 원인과 현황, 해결책에 대해 들어봤다.

 

김 위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외 농산물 생산의 급감으로 내년 2~3월이 되면 우리나라도 식량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 세계 곡물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이 56년 만에 발생한 심각한 가뭄으로 옥수수, 콩 등 주요 작물 생산에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세계 식량위기가 닥쳤던 2007~2008년 때보다 올 9월 초의 국제 곡물 가격이 더 뛰었다”고 덧붙였다. 대두는 지난 7월 9일 선물가격이 612달러까지 치솟아 역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농산물은 날씨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김 위원은 “농산물 생산에 피해를 주는 가뭄이나 홍수가 예전에는 가끔 발생했지만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상시화됐다”며 “곡물 가격 책정 시 날씨의 영향은 50% 이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는 미국·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호주 등 소수의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 가뭄이나 홍수가 늘면 곡물 생산량이 줄어 지구촌은 식량 문제를 겪게 된다.

 

김 위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성 감소 외에도 식량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은 몇 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그는 “국제 원유가격이 상승하면서 옥수수, 콩 등을 주원료로 쓰는 바이오 연료의 수요가 증가한 것도 식량 가격 폭등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식량으로 수출했던 옥수수로 바이오 에탄올을 제조하고 있다”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곡물을 수출하는 브라질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모건스탠리 등 거대 투자 회사들의 투기 자본도 식량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은 “식량 위기로 인해 곡물가격이 상승하면서 국제 자본들이 식량에 투기를 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새로운 가수요가 생겨 곡물의 공급과 가격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곡물을 수입할 정도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실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7%에 불과해 연간 1400만t 상당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부족해 곡물을 대체 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수입 밖에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동안 식량위기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로 다뤄지긴 했지만 피부에 와 닿을 만큼 느껴지진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위원은 “전체 가계지출비 중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지난 30~40년 동안 국제곡물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돼 곡물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내 곡물수입 방식이 선물거래가 아니라 대부분 일괄 현물구매로 이뤄져 올해처럼 가격이 급등할 때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식량 안보에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밀과 옥수수의 생산률은 1% 미만으로 99%를 수입해 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 위원은 “미래의 곡물시장은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 등 복합적인 이유로 매우 불안해 곡물 파동이 일어날 시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며 낙관론에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한국의 곡물시장은 세계 4대 메이저 곡물업체(카길·ADM·병기·드레뷔스)와 일본의 종합상사가 불러주는 ‘가격대로’ 사는 구조다.

 

이렇듯 곡물 파동으로부터 유연하게 대처하고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그는 “정부가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을 적극 지원하고 한국형 곡물메이저를 육성해 가격협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곡물메이저 회사는 정부가 주도할 수는 있으나 기업들의 참여가 불가피하며 곡물 애널리스트와 같은 전문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미국과 같은 일부 수출국가의 정보에만 의존해서는 ‘시장’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농업기지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김 위원은 “세계대전을 경험한 일본은 식량 확보를 국가안보차원에서 추진했고 30년에 걸쳐 해외농업기지를 준비했다”며 “해외농업기지 구축이 곡물 수입보다 경제적이라는 것을 직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처럼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과 의지가 중요하다”며 “뚜렷한 정책 목표와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태환 기자 pigletkth@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