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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전력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냉방기 사용 급증으로 전력수요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비전력량은 하루하루 ‘정상’과 ‘관심 경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과 같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발생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냉방기를 가동한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상점에 범칙금을 부과하고,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를 28℃ 이상으로 제한하는 등 전력수요 관리에 필요한 갖가지 규제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이들 규제책만으로는 블랙아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 전력수요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블랙아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전기요금 현실화(인상)’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경제학자·에너지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기요금은 원가조차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아 합리적 전력소비 패턴 형성·전력공급원 다양화 등에 방해가 된다는 것. 그러나 전기료 인상이 이뤄지기까지는 저소득층 부담 우려·물가 상승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기요금 인상이 그토록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료 인상에 따르는 갈등과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지난달 열린 ‘서울 국제전력시장 컨퍼런스’에 한국 대표 발표자로 나와 “전기료 인상 없인 블랙아웃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폈던 윤원철(46) 한양대 교수를 만나 전기료 인상과 관련한 쟁점·현황을 들어 봤다.
‘장기 고정비’ 반영 안 된 전기료, 미래세대에 ‘요금폭탄’ 될 것
윤 교수는 “원가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비현실적’ 전기요금이 블랙아웃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금이 현실화돼야 소비도 합리적으로 변합니다. 휴대폰 요금으로 1인당 한 달에 6~7만원 정도 지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기요금은 4인 가구가 한 달에 4~5만원 정도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에게 ‘합리적 소비’를 기대하는 건 힘들다는 말이죠. 요금이 싸다고 느끼기 때문에 낭비적 요소가 발생하는 겁니다.”
전기를 만드는 데는 재료비와 인건비만 드는 게 아니다. 발전소 유지비용, 개보수비용, 발전소 수명이 다 할 경우 새 발전소를 건설하는 비용도 생산 비용에 포함된다. 원자력의 경우 폐기물 처리비용, 주민 반대 등에 따른 사회적비용, 안전성 유지비용까지 모두 사실상 전기 생산 비용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에는 이러한 ‘장기적 고정비용’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현재 전기요금에 반영되고 있는 비용은 재료비와 인건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 회수는 전혀 안 되고 있죠. 발전소 시설이 모두 마련돼 있는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발전소 시설이 노후하면 중간에 개보수 공사를 해야 하고, 수명이 다 할 경우 새 발전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 비용을 지금 회수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요금폭탄을 맞게 될 겁니다.”
비현실적 전기요금은 발전소의 안전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계속된 적자로 개·보수에 필요한 비용이 부족하게 될 경우, 발전소의 적정 안전성 유지에 소홀하게 될 수 있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정전 대비책 CES 사업자, 원가 안 되는 전기료에 ‘줄줄이 도산’
이처럼 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전기료는 효과적 블랙아웃 대비책인 CES(Community Energy System·구역전기사업) 사업자들까지 줄줄이 도산시켰다. CES는 아파트 수천~수만 세대 규모 단지에 중대형발전기를 설치해 전기와 난방열을 동시 생산하는 지역에너지사업이다. 전력 공급을 분산하기 때문에 전력 피크 시 블랙아웃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부는 2004년 안정적 전력 공급과 전력 공급 분산을 목적으로 CES 관련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발전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급등한 반면 전기와 열 요금은 수년간 인상되지 않았다. 결국 누적적자를 이기지 못한 사업자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실제 법이 도입된 2004년에는 26개 사업자·32개 사업체가 있었지만 시행 8년차인 현재는 13개 사업자·17개 사업체로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윤 교수는 “가스 요금은 두 배, 세 배 계속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묶여있으니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이들의 수익성이 보장되고, 대규모 정전에 대한 효과적 대책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 효율적 경영 전제 하에 단계적 인상해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기요금 인상폭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는 많이 올리는 게 맞지만, 물가 안정 등을 생각하면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며 “단계적·점차적으로 인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전과 지경부는 전기요금 인상폭을 놓고 힘겨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8일 한전이 내놓은 13.1% 인상안에 대해 지경부는 “인상률이 너무 높고 자체 구조조정 노력도 필요하다”며 부결시켰다. 이후 한전은 10.7%를 요금 인상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6.1%를 연료비 연동제를 이용해 보전 받는 수정안을 내 놓았으나, 이 역시 지난 17일 부결됐다.
이와 관련 윤 교수는 “먼저 한국전력공사 내부적으로 낭비적 요소 없이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전기 생산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과정이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소수 저소득층에 전체 전기료 맞추자는 건 비논리적”
전기료 인상 시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질 우려에 대해 묻자 “저소득층이 전체 국민의 60~70%를 차지한다면 그들을 기준으로 전기료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저소득층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전체 국민의 매우 일부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전체 요금을 맞추자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현재 한전으로부터 전기료를 할인받고 있는 복지할인지원 대상은 전체 전기 사용 주택의 16.8%(1300만호 중 219만호)다. 여기에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장애인 가정뿐 아니라 대가족 할인·3자녀 가구·독립유공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중에서 저소득층만을 구분한다면 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윤 교수는 또 저소득층의 에너지비용을 지원할 때는 가격을 싸게 공급하는 ‘가격보조’가 아닌 ‘소득보조’(가격은 그냥 두고 별도 보조금을 지원)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격 자체를 싸게 공급할 경우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에너지를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주택용 누진제, 3단계로 줄일 필요”
주택용 전기 누진제와 관련해서는 “너무 과도하고 촘촘하게 책정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 누진제는 현재 6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누진 구간이 너무 촘촘하고 많다 보니 전기를 조금만 더 써도 전기요금이 급상승하는 문제가 있죠. 큰 돈 들여 에어컨을 사 놓고도 정작 누진제가 무서워 사용하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이걸 3단계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원철 교수 ▷ 서울대 농경제학 학사 ▷버지니아주립대(VPI&SU) 농업응용경제학 박사 ▷前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팀장 (에너지 경제·정책 연구) ▷現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現 전기위원회 법률․분쟁조정전문위원회 전문위원 ▷現 지경부 에너지산업전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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