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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칼럼] 폭염과 폭우가 6·25 승패 갈랐다
  2014-06-27 16:19 정연화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은 1950년 8월 초, 낙동강 방어선을 사이에 두고 유엔군과 대치했다. 하지만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북한군은 병력뿐 아니라 각종 탄약이나 보급품 지원에 애로를 겪기 시작했다. 때문에 북한군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정면공격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북한군에 공격을 먼저 시도한 첫 전투가 바로 ‘킨 전투’다. 이때 미 제 25사단은 병력 2만 4000여 명과 전차 101대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고 사단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Kean TF)’로 명명했다. 이에 대적하는 북한군 제6사단은 병력 7500명 정도에 전차는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객관적인 전투력에서는 미군에 비해 상당한 열세였지만 그들은 산악 능선의 주요 지점을 장악하고 있다는 유리함이 있었다.
 
미군의 공격은 8월 7일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됐다. 그러나 산악 능성의 이점을 이용해 주요 목을 차단하고 있던 북한군에게 도로를 따라 공격하는 미군은 좋은 표적이 됐다. 6·25전쟁에서의 중요한 특성 한 가지는 전차가 도로 외에서는 기동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격하는 전차는 도로를 따라 진격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며 방어 시에도 도로 양측에 4~5대의 전차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 장마가 끝나고 온도는 35℃까지 오르는 등 폭염이 계속돼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병력이 전투손실의 6배나 됐다.
 
악전고투 끝에 미군의 선두 부대는 이번 작전의 목표인 사천-진주선 가까이에 있는 장천리-진주 고개를 연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산악 능선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은 선두 부대를 지원하는 후속부대를 곳곳에서 차단하고 기습적인 공격을 해왔다.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기습적인 공격을 퍼붓는 북한군의 게릴라 전술과 살인적인 무더위로 많은 손실을 입은 미 제25사단의 공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킨 작전’이 원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해 8월 13일 작전 중지 명령을 내린다. 한국전에서 미국의 최초 공격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당시 최고 38℃를 넘는 한국의 무더위는 전투에서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인이었다. ‘킨 작전’에서 35℃를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미군의 최초 공세작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이다. 한국의 기후 특성상 8월 초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연중 가장 무더울 때이며 특히 이 해(年)는 예년에 비해 평균 2~3℃ 이상 높은 고온현상을 보인 해였다.
 
더위가 인체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를 지수로 나타낸 것이 ‘열파지수(Heat Index)’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온도와 습도가 함께 높을 때 더위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열파란 ‘비정상적이고 불쾌한 느낌을 주는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기간’을 말하며, 열파지수는 습도와 기온을 활용해 사람이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기온을 표현한 것이다. 열파지수가 130 이상에서는 태양열에 지속적으로 인체가 노출되면 열사병이나 일사병의 위험이 매우 높고, 105~130에서는 일사병이나 열경련의 위험이 높다.
 
한국에서 8월 낮 동안의 습도는 대체로 70% 이상으로, 매우 습한 날씨를 보인다. 이에 따르면 ‘칸 전투’가 벌어질 당시 기온이 35℃ 이상이라면 열파지수는 130 이상이 된다. 열사병이나 일사병의 위험이 매우 높은 기상조건이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조건이었으니 총에 맞아 죽은 병력보다 더위로 죽은 병력이 6배 이상 많았다는 기록은 사실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 미군이 주도해 북한군에게 공세를 퍼부어 실패했던 두 번째 전투는 ‘도살 작전(Killer Operation)’이다. 여기서 미군의 패배는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겨울 호우가 원인이었다. 1951년 2월 유엔군이 벌인 도살 작전에 기상이변이 발생했다. 그 당시 겨울은 예년 평균치를 넘어설 정도로 무척 추웠던 가운데 한겨울에 수백 ㎜의 호우가 내린 것이다. 도살 작전의 강원도 지역에 투입된 병력은 무어 소장이 지휘하는 미 제9군단으로 예하에는 미 제24사단, 미 제1기병사단, 미 제2사단, 미 제1해병사단, 한국군 제6사단, 영국군 제28여단 등이 있었다.
 
1951년 2월 21일 오전 10시, 미 제9군단은 횡성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낮은 구름으로 인해 공중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공격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다. 공격에 조바심을 낼 무렵 흐렸던 날씨는 밤이 되면서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비의 강도는 더욱 강해져 마침내 하천과 강물이 범람하면서 전투병력 뿐만 아니라 차량도 물에 떠내려갈 지경이 됐다. 이 비는 거의 40시간이나 이어지면서 그간 흰 눈에 덮여있던 전장을 일시에 진창으로 바꿔 놓고 말았다. 이런 호우는 수십 년만에 발생한 기상이변이었다. 불어난 강물로 인해 유선망은 단절되고 보급품은 물에 떠내려갔다. 각 하천이나 강은 통행이 불가능했으며 한강에 가설해 놓았던 주교(舟橋)마저 떠내려가 사단의 보급로는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다. 이후 공병들의 노력으로 2월 25일 새벽 4시에 한강의 가교는 완성이 됐지만 지휘소, 진지, 보급소, 도로 등이 모두 진흙탕이 돼 며칠간 공격은 미뤄졌다. 호우로 고전하던 미 해병사단은 3월 4일에야 겨우 횡성을 점령했다.
 
도살 작전처럼 전투나 작전에서 비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먼저 병력 및 장비의 기동 제한을 가져오며 병력의 사기와 능률에도 영향을 끼친다. 탄약으로는 소이탄 효과 저하가 있으며 정보 및 전자전에서는 사진 및 적외선 수집 장비의 능력이 떨어진다. 또 표적 반사파를 차징(Charging)해 레이더 교란현상이 발생한다. 화학전에서는 생물학 작용제와 화학 작용제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비가 시간당 13㎜ 이상 내리면 항공작전에서의 표적획득이 제한된다. 전자장비에서는 대기권 반사 송신방해와 함께 레이더 탐지거리 및 정확도가 감소하고 AM/FM 무선방해현상이 발생한다. 시간당 25㎜ 이상 비가 내리면 청은감지기 및 레이더 효과가 감소하며, 12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내릴 경우 병력과 장비의 이동속도가 지연되고 교통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이처럼 전쟁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전투에 임하는 지혜로운 지휘관이라면 전투가 벌어질 지역의 토양조건과 날씨 변화 및 특성을 미리 파악해야만 한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나 눈은 단 몇 분 만에 건조하고 마른 전쟁터를 진흙탕의 수렁으로 바꿔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된 지휘관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잘 보여준 것이 바로 ‘킨 작전’과 ‘도살 작전’이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wxbahn@kwea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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