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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PD의 날씨살롱] 해류(海流)를 타고 온 겨울 꽃 수선화
  2013-12-27 11:24 정연화   
 
2013년 마지막달, 초겨울부터 북서쪽의 한기가 빠르게 남하하면서 한반도는 강추위와 함께 잦은 눈이 내렸다. 최근에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는 물론 이집트 등 중동지역 곳곳에도 눈이 쏟아졌다는 외신이 있었다. 이제 북반구는 사행(蛇行)하는 제트기류에 갇혀있는 북극 한기의 수축(收縮)에 따라 추위의 강도를 반복하는 겨울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최남단, 제주도는 이번 겨울 들어 아직까지는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기상학적으로 일평균 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는 겨울인 날은 며칠 안 된다. 바다를 끼고 있는 섬이나 해안지방은 기후특성상 한겨울도 대부분이 영상의 날씨다. 하지만 강한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종일 영하권인 날이 많다. 강한 북서풍에 일렁이는 겨울바다, 세찬 바람에 날린 포말(泡沫)이 얼어붙는 제주도 해안가에 피어나는 겨울 꽃이 있다.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무리지어 피고 있는 제주도의 수선화(水仙花)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피는 꽃으로는 동백꽃과 수선화가 있다. 초겨울부터 붉게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섬지방과 남해안은 물론 중부지방의 해안지역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수선화는 제주도와 남해의 일부 섬 지방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수선화는 늦가을이면 잎이 자라기 시작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연노랑 꽃을 피우는 겨울 꽃이다.

 ▲ 겨울에 핀 제주도 수선화 <사진 제공 = 한라수목원>
 
눈 속에 핀다고 해서 설중화(雪中花), 수선(水仙)으로도 불리는 수선화는 따뜻한 지중해가 고향이다. 길쭉한 부추같이 생긴 두툼한 잎에 일자로 매끈하게 뻗은 꽃대, 그 끝에 네댓 송이 꽃봉오리가 달린다. 수선화는 곤충들의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속의 비늘줄기가 번식을 대신한다. 하지만 매개체를 유혹하던 유전자 때문인지 향기는 풍란만큼 아득할 정도로 짙다. 제주도에 자생하는 수선화는 두 종류다. 먼저 제주도 사투리로 <마농>이라 불리는 야생 수선화이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먹는 마늘'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속뜻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마늘'이다. 밭작물이 중요했던 그 옛날에는 생명력 강한 수선화가 천덕꾸러기 잡초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마농>은 흰 꽃잎 가운데 여러 개의 노랑 또는 흰색의 작은 꽃잎이 섞여 있다. 제주도의 돌담길이나 해안가에 제멋대로 피어나는 수선화 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금잔옥대(金盞玉臺)로 불리는 조금은 화려해 보이는 수선화다. 꽃의 모양이 마치 옥으로 만든 받침에 금잔이 놓여 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물가에 피는 수선화는 그에 얽힌 신화(神話)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결국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의 이름을 따서 속명도 나르키시스(Narcissus)이고, 꽃말도 자기애(自己愛)를 뜻한다.

 ▲ 제주도 토종수선화 ‘마농’(좌)과 수선화 ‘금잔옥대’(우) <사진 제공 = 한라수목원>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수선화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지중해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학자들은 사람이 아닌 바닷물에 흘러온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북쪽으로 이동하는 쿠로시오 해류(海流)에서 지류(支流)인 황해해류를 타고 제주도 남쪽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자수나 코코넛은 해류를 이용해 멀리까지 열매를 이동시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열대식물이다. 이 같이 제주도해안에는 오랜 항해 끝에 정착한 식물군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제주시 월령리에는 손바닥 선인장으로 불리는 유일의 선인장 자생군락지를 볼 수 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선인장이 북적도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쿠로시오 난류(暖流)에 실려 제주도해안에 자리 잡은 것이다. 또 제주도 토끼 섬(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에 무더기로 자생하는 수선화과의 문주란(文珠蘭)도 먼 옛날 남쪽바다에서 밀려온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면서 시작됐다.

 ▲ 제주 월령리 선인장 자생군락지
 
제주시는 얼마 전까지도 수선화를 시화(市花)로 정했었다. 제주도의 수선화는 모진 바닷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담 사이에 흙 한 줌만 있으면 뿌리를 내린다. 엄동설한에도 온힘을 다하여 꽃을 피우는 제주도 해안의 수선화는 진정한 한반도의 봄의 전령사(傳令使)이다.

 김철수 PD sirocc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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