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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PD의 날씨살롱] 그녀의 향기, 라일락 피는 봄밤(春宵)
  2013-05-03 16:11 정연화   
 
올 봄 전국 곳곳의 봄꽃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는 어느 해 보다 어려움을 겪었다. 남부지방은 보름이나 빠른, 때 이른 개화로 만개(滿開) 이후 꽃잎이 떨어지는 가운데 축제가 열렸다. 그런가하면 중부지방은 잦은 꽃샘추위로 막상 축제일에 벚나무가 꽃망울을 피우지 못했다. 올 벚꽃 개화일이 부산의 경우(3월 21일) 지난해보다 15일 늦었고 서울은(4월 15일) 작년과 같았다. 남녘의 화신(花信)이 중부지방까지 북상하는 데는 보름정도가 소요되는데 올해는 열흘이 더 늦은 25일이나 걸렸다. 하지만 올 봄꽃은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철쭉 순서대로 피고 있다. 남부와 중부지방에서 대부분의 봄꽃나무가 함께 꽃을 피운 지난해 봄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 계절의 여왕 5월, 산야는 연두빛으로 물든다.
 
산야가 연두 빛으로 채색(彩色)되는 5월의 시작, 이 무렵이면 뭉게구름 같은 꽃송이의 라일락(lilac)이 한창이다. 봄밤의 라일락 향기는 더욱 은은하면서도 진하게 주변을 휘감는다.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 따듯한 기온과 부드러운 봄바람으로 충만한 밤을 일컫는 소동파의 시구에 나오는 춘소(春宵)에 어울리는 봄의 향기다.
 
봄날의 밤이라고는 하지만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에 따라서 나타나는 계절감과 느끼는 분위기는 각기 다르다. 북서쪽에 위치한 고기압 전면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면 아직도 겨울기운이 남아있고 내륙산간에는 늦서리가 내린다. 그러나 남서기류가 몰고 오는 훈풍은 따스한 봄기운을 실어온다. 평균기온 15℃를 넘어서고 잔잔한 바람이 부는 5월의 밤, 이때 우리는 춘소(春宵)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다.
 
▲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중략),
 
영국 시인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황무지 [The Waste Land] 중 일부다. 오래전부터 라일락(lilac)을 시나 노래 그림의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꽃나무로 추위와 공해에도 강하다. 라일락꽃나무의 우리이름은 수수꽃다리다. 송이처럼 피어나는 작은 꽃 무더기가 마치 수수이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수수꽃다리와 라일락 이외에도 정향나무, 리라 꽃으로 부르는 꽃나무들이 여럿 있는데 같은 나무거나 비슷하게 생긴 형제들이다. 라일락은 서양의 수수꽃다리, 정향나무는 중국식, 리라꽃나무는 프랑스식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현재 세계 원예시장에서는 미스 김 라일락으로 불리는 개량종의 인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 북한산 자락에서 피어나던 수수꽃다리 씨앗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 김 라일락>으로 다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직후인 1947년 미군청소속의 식물학자가 북한산 백운대부근에서 채집해 간 토종 라일락(털개회나무) 씨앗을 번식 개량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을 도와준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붙였다.
 
▲ 매년 이맘때쯤이면 라일락향이 코끝을 진하게 스친다.
 
벚꽃이 자취를 감춘 주변 곳곳에 라일락꽃 내음이 그윽하다. 뿌연 하늘이 조금은 답답해 보이지만 코끝을 스치는 라일락 향기가 있는 봄의 절정, 작은 키에 고운 꽃 색깔 그리고 짙은 향기로 이국땅에서 꽃을 피우고 있을 미스 김 라일락, 그녀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한 봄의 한가운데, 5월의 봄밤(春宵)이다.
 
<사진 = 경기 광명 철산동 2013.4.30 / 필자 제공>

 김철수 PD sirocc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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