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칼럼 > [맹소영의 날씨이야기] 야누스의 얼굴을 한 ‘태풍’

태풍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그 중에서도 태풍 ‘루사(Rusa)‘에 의한 피해는 기록적이다. 2002년 8월 우리나라를 통과한 ‘루사’는 가장 큰 재산손실을 일으킨 태풍으로 그 피해액이 약 5조2262억원 에 달한다. 그 당시 강릉에는 하루 동안만 870.5㎜의 강수를 기록, 지금까지 일 최다강수량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명 피해가 최악으로 기록된 것은 1936년 8월, 남한 전역을 강타한 태풍이었다(당시에는 태풍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음). 당시 제주에서는 초당 35.8m의 강풍이 불었고, 강릉에서는 358㎜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이 태풍은 사망·실종 1232명, 부상 1646명의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냈다.

이렇듯 여름철이면 거의 매년 찾아오는 태풍은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는 특성 때문에 자연재해를 낳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홍수나 산사태, 해일 등을 발생시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오는 미운 오리새끼임은 틀림없지만, 백조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02년 이후 6년간 태풍 피해액은 약 10조여 원에 달했지만, 피해액의 최소 8%이상은 태풍이 가져다 준 혜택인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태풍의 발생 원리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태풍은 꼭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남북위 5도 부근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적도의 남는 열을 극지방으로 수송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불균형하게 분포한 지구의 열적 평형이 유지된다. 태풍 1개가 가진 평균 에너지양은 2차 대전 때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1만개의 위력이라고 하는데, 연평균 26개 안팎으로 발생하는 태풍 수를 감안해보면 태풍이 남북으로 수송해주는 열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태풍은 여름가뭄 속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봄가뭄이 초여름까지 이어졌던 농가에 많은 비를 뿌리고 지나, 가뭄해갈에 큰 도움이 돼줬다.

어민들은 가끔 태풍을 ‘효자’라고도 부른다. 지난 2007년에 발생한 태풍 ‘올리와’가 그랬다. 태풍이 만들어낸 강한 파도와 낮은 수온은 적조생물의 번식을 막아 적조 현상을 막고, 강한 바람으로 심층까지 뒤섞인 바다는 영양이 풍부한 저온의 하층수를 바다표층까지 끌어올려 이 지역에 풍부한 어장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이 밖에도 태풍은 물 위에 떠있는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주기도 하고, 대기 중 오염물질을 말끔히 정화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기상청은 올 여름 역시 평년과 비슷한 1~2개 정도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풍이 매번 효자 노릇만 하고 지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매우 강한 바람과 함께 엄청난 양의 비를 동반하는 것이 태풍의 본질인 만큼 마냥 반갑게 맞이할 존재만은 아니다. 경제적 이익 못지않게, 경제적 손실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대비책을 다양하게 강구해두는 것이 우선돼야 할 과제다.

맹소영 날씨칼럼니스트 weathercomz@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