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나 울리히 벡(Ulich Beck)과 같은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근대사회와 근대화에 대한 성찰의 작업 중 하나로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이 대두됐다.
사실상 ’위험‘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인간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재난과 위협에 대한 대응과 대비로 이루어져왔다.
특히 ‘근대(Modernity)’와 ‘근대화(Modernization)’의 가장 큰 명분은 자연으로부터 가해지는 재난을 통제하고 극복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근대인’들의 의지는 자연과의 투쟁으로 점철됐다.
그러나 300여년에 걸쳐 매진해 왔던 ‘근대화’의 성적표는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근대는 우리가 기대했던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하지 못했다.
산을 깎고 댐을 쌓고, 불을 밝혀 밤을 지워버리고, 비행기와 우주선을 띄워 중력의 법칙까지 무시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사소한 ‘성취’에 취해 인간들이 마치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한 듯한 착각에 빠져 우쭐하기도 했지만, 인간들이 우쭐할 때마다 어김없이 지진은 땅을 흔들고 바다를 뒤집고, 폭우는 들판을 덮어버리고, 폭염은 땅 위에 모든 생명을 말려버린다.
결국 근대가 약속했던 자연의 정복은 지켜지지 못했고, 그에 대한 통제와 예측조차 난망(難望)한 것이 근대사회가 받아 든 성적표이다. 근대화의 성적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근대가 고안한 모든 장치와 제도들이 인간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위험’들을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무모한 도전은 중금속과 방사능으로 범벅이 되어 마음 놓고 숨 쉬고, 마시기 조차 어려운 공기와 물, 근대가 발전시켜 온 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새로운 질병이라는 ‘괴물’들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
근대 이전 인류는 자연의 ‘위험’ 한가지에만 노출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자연의 재해와 인간이 만든 재해라는 두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근대의 성적표는 참으로 초라하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근대가 범했던 가장 큰 오류는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여 그 ‘주인’이 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근대가 저질렀던 오류의 수정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다.
이것을 인식해야만 인간의 욕망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자연의 요구도 존중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자연과 타협을 할 수 있다. 만약 ‘근대인’들이 자연과 타협해 왔다면, 근대의 시대가 이토록 수많은 새로운 괴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타협하기 위해 하늘과 대기와 물의 기색(氣色)을 살펴야 할 때다. 자연의 기색을 살펴 그들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파악하고, 인간도 자연에 양보해야만 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목록’을 작성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이중(二重)의 위험사회’를 만들어버린 근대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김상회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한백연구재단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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