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평소 같으면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각인데 집 안이 컴컴하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잿빛이다. 곧이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런 날엔 어김없이 막걸리와 파전이 생각난다. 뜨끈한 어묵탕도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먹어도 식욕이 멈추질 않는다. 황금 같은 주말을 먹기만 하면서 보냈다.
비오는 날 식욕이 끝없이 당기는 경험,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비만전문 클리닉 365mc가 고객 168명을 대상으로 ‘식욕’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57%가 비오는 날 식욕이 증가한다고 답했다. ‘흐린 날씨’라고 응답한 사람도 27%였다. 반면 ‘맑은 날씨’라고 답한 사람은 14%에 그쳤다.
비오는 날엔 왜 식욕이 당기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조량’에 있다. 우리 몸은 햇빛에 노출되어야 비타민D를 생성할 수 있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뇌에 ‘배부름’ 신호를 전달하는 호르몬인 렙틴(Leptin)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 비오는 날은 해를 볼 수 없으므로 비타민D 생성이 힘들다. 결국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배부르다는 생각을 못하게 된다.
영국 애버딘대학교의 연구(Aberdeen University Department of Medicine and Therapeutics, 2008)에 따르면 과체중인 사람들은 혈중 비타민D 함유량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비만인 사람들은 보통 체중인 사람들보다 10% 적은 비타민D를 생성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비타민D와 체중 사이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조량에 따라 체내 함유량이 달라지는 호르몬이 또 있다. ‘멜라토닌’과 ‘세라토닌’이다. 멜라토닌은 수면을 취할 때 분비되는데, 낮에 이 호르몬이 증가하면 기분이 울적해진다. ‘행복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라토닌이 감소하는 경우에도 기분이 가라앉게 된다.
일조량이 적으면 멜라토닌은 증가하고 세라토닌은 감소한다. 때문에 우울해진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탄수화물식이나 지방식이 당기게 된다.
기온과도 관련이 있다. 기온이 낮은 비오는 날에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대사 작용이 더 활발해진다. 이에 따라 소화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공복감을 더 빨리 느끼게 된다. 또 기온이 떨어지면 말초혈관은 수축하고 내부 장기 혈액이 늘어나 위장 운동과 위산 분비가 활발해지며 식욕이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인 현상도 원인 중 하나다. 비가 오는 날은 외부활동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한 곳에 앉아서 음식이나 술을 즐기려는 사람이 많다. 비오는 날 부침개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것은 신체현상인 동시에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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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