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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태풍 루사에 이어 2003년 매미가 우리나라를 강타해 약 10조원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입히고 국가경제까지도 어렵게 만든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태풍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태풍전담기관 설립 준비가 시작됐다. 마침내 2008년 4월 제주도 서귀포시 한라산 남측에 국가태풍센터가 세워졌다.

 

태풍센터가 제주도에 위치한 이유에 대해 국가태풍센터 김태룡(58) 센터장은 “제주도는 우리나라로 북상하는 태풍 대부분이 우선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곳”이라며 “태풍의 길목에서 선제적으로 태풍을 감시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국토 남단 제주도에 입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풍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센터는 태풍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실현한다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태풍 예보·연구 전문기관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이 센터는 태풍예보와 연구, 기술개발을 한군데로 모아 운영한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 총회를 개최했고 현재 태풍위원회 의장국을 맡고 있다.

 

또한 올해 초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태풍위원회 총회에서는 태풍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킨타나상’을 수상했다.

 

김 센터장은 “태풍위원회 연구훈련 프로그램에 의해 선발된 개도국의 태풍전문가를 대상으로 매년 태풍 예보훈련과 태풍에 관한 공동연구 등을 수행한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태풍센터는 최근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태풍분석 및 예측시스템’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태풍진로에 대한 다양한 모델의 결과를 동적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검증해 최적의 진로를 찾는 시스템이다. 예보관의 보완, 보정을 거쳐 진로뿐 아니라 강도, 이동속도, 영향반경 등 태풍정보를 통보하는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김 센터장은 “편리성과 산출물 유효성면에서는 세계 그 어떤 시스템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면서 “태풍예측에 유용한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태풍 예측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하지만 태풍은 일반날씨에 비해 특별한 기상현상으로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태풍은 소형태풍이라도 영향범위가 200km에 이르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내에 발생한 ‘루사’나 ‘매미’, ‘나리’ 등은 풍속과 강수량 등에서 종전의 기후기록을 경신했으며 재해 규모도 그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2002년 루사는 강릉지역에 일강수량 870mm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2003년 매미는 제주도 고산에서 순간 풍속 초속 60m라는 기록을 각각 남겼다. 또 나리는 2007년 제주도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폭우로 홍수와 침수피해를 일으켰다.

 

김 센터장은 “이런 현상은 모두 2000년대에 나타났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 역시 강화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태풍에 대한 대비는 더욱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태풍전용 수치예측모델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모델 결과를 이용한 앙상블예측 등 예측기술의 개발이 중요하다. 위성·레이더·선박·항공기를 이용한 정밀 관측자료의 확보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는 “평상시에도 태풍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은 여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국가태풍센터는 태풍시즌이 끝나도 할 일이 더욱 많아진다. 태풍은 겨울에도 발생하기 때문. 우리나라에 영향은 주지는 않지만 기본인력은 여름·가을철과 마찬가지로 태풍을 감시하고 예보를 발표한다.

 

이때는 태풍감시·예보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태풍시즌에 잠시 중단되었던 태풍연구와 태풍시스템 개선, 예측기술개선, 국제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런 일들이 태풍 감시·예보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오히려 일은 더욱 늘어난다.

 

특히 태풍예보를 사후분석해 오차발생의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안을 만드는 것은 본연의 업무로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런 업무는 다른 기관이나 국가들과 협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많아 기술교류, 워크숍, 국제협력회의 등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극한 기상현상의 일종인 슈퍼태풍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보고회도 열렸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태풍의 발생빈도는 줄고, 태풍의 강도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가 발표됐다”면서 “최근 10년 사이 태풍중심의 최대풍속은 1.7m가 늘었고, 중심기압은 3.4hPa이 떨어졌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태풍의 진로도 정상적인 진로패턴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는 “진로가 전후진하거나 Z자나 S자 형태로 진행하는 경우, 6월에 서해상으로 태풍이 북상하는 등 태풍예보관의 예측을 어렵게 하는 진로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상청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원조를 받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개발도상국에 태풍예보시스템이나 천리안 위성자료를 제공하는 원조국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상청은 자체 기상위성을 보유하고 있고 슈퍼컴퓨터와 기상레이더망, 자동기상관측망 등 우수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상기술력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 후발 국가들에게 기술과 기상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국가태풍센터의 경우 태풍예측시스템을 세계 표준화해 필요한 국가에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는 하나의 상품으로 수출할 수도 있고 기술지원을 위한 여러 가지 파생 상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태풍은 항시 일방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는 “태풍은 저위도에 축적된 에너지를 고위도로 수송해 지구의 열평형을 조절하는 매우 고마운 존재”라며 “다만 이 에너지가 극단적인 폭우, 강풍을 동반한 기상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피해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풍에 동반되는 강수는 귀중한 수자원이다. 여름철에 장마가 시원찮을 때, 소위 마른장마라 하여 한여름 가뭄에 시달릴 때 태풍이 가져다주는 강수는 그야말로 단비가 될 수 있다.

 

또한 다목적댐에 물을 가득 채우거나 지하수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게 되면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건조기에 매우 귀중한 자원이 된다. 대기나 지표면이 정체되어 환경오염이 심각할 때 태풍은 이를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해양에서는 적조현상이 있을 때 태풍은 특효약이다. 연안 어장이 황폐화되었을 때는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준다. 김 센터장은 “태풍은 이렇게 긍정적인 역할도 많지만 홍수와 침수, 시설물 파괴, 해일과 같은 처참한 피해를 우선 보여주기 때문에 태풍에 대해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태풍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통해 사전에 대비를 잘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태풍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기상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태풍피해를 최소화 하는 가운데 태풍이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이득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센터장은 “실체가 분명한 태풍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가태풍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최고의 태풍전문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환 기자 pigletkth@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