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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농업계에선 ‘종자(씨앗이나 묘목) 전쟁’이 치열하다. 종자는 먹거리와 직결되는 미래 농업의 기반이자 차세대 성장산업이기 때문이다. 종자 선진국들은 일찍이 인수·합병(M&A)을 앞세워 시장지배력을 강화해왔다. 외환위기 때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한국의 주요 종묘회사를 인수한 이유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식량안보 및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유전 자원의 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종자는 식량 주권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토종 종자가 없으면 수입해 쓰거나, 수입 종자를 베끼면서 로열티를 내야 한다. 농가들은 종자 업체로부터 종자를 사다가 이를 심어 수확을 한다. 기존 품종에 비해 얼마나 개량된 종자를 쓰느냐가 해당 농가의 경쟁력을 결정하기에 국산화된 우량종자를 키우는 건 중요하다. 이렇듯 아무리 재배 기술이 발달해도 우량종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식량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세계 종자시장은 2010년 698억 달러로 추정되며 10년 후인 2020년에는 1650억 달러로 2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이 시장을 몬산토(미국), 신젠타(스위스), 사카타(일본) 등 10대 다국적 종자기업들이 70%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1996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1∼3위 종묘업체가 모두 외국 업체로 넘어갔다. 국내업체들이 가지고 있던 종자권리까지 이전돼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 기업 국내시장 점유율은 약 50%에 달한다. 이는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절반 정도가 외국 업체의 종자로 심어졌다는 얘기다.

 

세계 종자시장에서 우리 종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008년)선에 불과하다. 현재 등록된 종자업체 중 연구원 10명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단 4곳뿐이다. 나머지 950여 개 업체는 판매상 수준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우리 종자기업이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가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먹는 청양고추의 씨앗은 전량 미국의 다국적 종자회사 몬산토에서 들여온다. 흥농종묘가 개발했지만 외환위기 당시 다국적 종자 기업으로 넘어가 ‘수입품’으로 돌변했다. 금싸라기 참외와 불암배추 등도 마찬가지. 현재 우리 농산물의 67% 상당은 외국 씨앗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장미ㆍ파프리카 등 일부 수입종자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2002년 가입한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의 로열티 납부 면제 기간(10년)이 끝났기 때문이다.

 

로열티 지급의무 발생 품목은 1998년 27개에서 2008년 223개 품목으로 급증했다. 농림식품생산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UPOV에 가입한 이후 종자로열티로 2002년 13억원, 2010년 218억8000만원을 각각 지급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급해야 할 로열티도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종자의 활용과 쓰임새는 식량보급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종자는 천연물  신약 개발의 보고가 될 수 있다. 천연물을 이용해 만든 약은 합성 약보다 부작용도 적다.

 

가장 대중적인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과 신종플루의 해결책인 ‘타미플루’는 모두 천연물로 만든 신약이다. 이러한 천연물 신약은 투자효율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신약을 1건 개발할 때마다 연간 1조원~2조원의 매출을 창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타미플루’의 2009년 매출액은 약 20억 달러로 전년대비 4배 이상 급증했다. 우리나라도 미래 산업을 이끌 선도 기술 분야로 ‘천연물 신약 개발’을 선정하고 2020년까지 10조원 매출 달성을 목표로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또한 커피나무 종자인 커피콩을 볶아서 커피를 만들고, 코카나무 잎의 추출물과 콜라나무 열매로 콜라를 만든다. 이렇듯 종자는 기호식품으로도 애용되며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부는 국산품종 보급률을 높여 로열티 지출을 줄이고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신품종 개발과 보급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2009년 ‘종자산업 육성대책’을 내놓고 종자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이로 인해 딸기 등 일부 품종은 국산화율이 부쩍 높아졌지만 전체적인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품종 개발 기술이 상당 부분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가 국내의 개발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유통연구부 박기환 연구위원은 “정부는 앞으로 민간 전문육종가를 지원하고 종자품질 보증체계를 만드는 등 종자 국산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종자수출을 늘리고 로열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농식품부·농촌진흥청·산림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 사업도 지난달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통해 2021년까지 정부 3985억원, 민간기업 926억원 등 4911억원이 종자개발에 투자될 계획이다.

 

박 위원은 “종자산업의 경쟁력 없이는 농업의 경쟁력 향상은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세계각지에서 육종 소재와 시장정보를 모아 품종을 개발하고 민간이 이를 재배해 판매 유통하는 등 역할을 균형 있게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투자 대비 성과를 얻진 못하겠지만 인력양성은 물론 연구 인프라 구축 등 미래에 대한 투자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자 육성으로 인한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농진청은 로열티 문제에 가장 민감한 장미를 병에 강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진 품종으로 개발했다. 그 결과 2005년 국산 품종 보급률 1%이던 것을 지난해 22%로 확대시켰다.

 

딸기의 경우도 2000년도 초까지만 해도 모두 일본 품종이었으나 우수한 국산 품종이 육종·보급됨에 따라 국산품종 보급률이 2002년 9.2%에서 지난해 72%까지 높아졌다. 딸기는 로열티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참다래의 경우는 ‘제시골드’, ‘한라골드’를 중국에 수출해 이제는 오히려 해외로부터 로열티를 받아오는 효자 품목으로 성장했다.

 

김태환 기자 pigletkth@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