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엔 여성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발 빠른 패션계에서는 일찌감치 ‘미니’제품을 대거 선보이며 여심을 흔들고 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올 여름 패션 스트리트의 키워드는 ‘미니멀리즘’이다. 모든 하의를 힙 아래까지 길이를 잘라낼 정도로 쇼트의 열풍이 거세다”고 말했다.
불경기엔 여성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은 1920년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폴 니스트롬 교수가 쓴 <패션 경제학>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치마 길이와 주가의 상관관계를 다뤘다. 이 가설은 주식시장이 엄청난 활황을 보였던 1860년대 초 영국에서 여성들의 머리 장식 높이가 무려 2m까지 극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당시 ‘스펙테이터’지의 발행인이었던 아일랜드계 정치가 리처드 스틸 경은 “주가는 여성들의 머리 장식 높이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경제가 어려워지면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경제적 인심뿐만 아니라 심리적 여유마저 잃고 각박해져서 웬만한 일로서는 관심이나 흥미를 끌지 못하므로 치마길이를 바짝 끌어올려 강한 자극을 내보내고자 하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짐작된다.
여자는 자기가 아닌 남을 위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 화장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속설과 정반대 주장이 나왔다.
블황의 전조현상으로 긴 치마가 유행한다는 말이다. 지난 12일 프랑스에서 쌍둥이를 낳은 졸리는 출산 전 공개 석상에 나타날 때 화려하지 않으면서 발목까지 기장이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었다. 졸리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가수 제시카 심슨, 패션 전문가 레이철 조도 하늘거리는 주름 장식과 함께 길게 늘어뜨린 치마를 입고 나타났다.
‘바닥 쓸기 치마’가 할리우드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프랑스의 젊은 여성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이 15일 전했다.
뉴욕 타임스의 패션전문기자 수지 멘케스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치마 길이가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의상 담당 큐레이터 해럴드 코다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미국에서는 불황이 예견될 때 치마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2008년 여름 컬렉션에서 긴 치마의 유행은 이미 예고됐다. 고전적인 ‘샤넬’에서부터 젊은 감각의 ‘크리스토퍼 케인’까지 모두 길게 늘어뜨린 치마를 가지고 나왔다. 할리우드 스타인 패리스 힐턴이 입고 다녔던 야한 핑크빛의 노출이 심한 드레스는 모습을 감췄다. 지난해 10월은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시기였지만 디자이너들은 올여름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주식시장을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엔 올 여름에도 여전히 거리마다 시원한 각선미를 뽐내는 여성들로 넘쳐나고 있다. 어쩌면 미국과 우리나라는 불황과 관련하여 치마길이의 변화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닐까?
■김웅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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