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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반 개인이 저(低)에너지주택인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실제로 서울 이태원에서 패시브하우스 건축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난 사례를 통해 국내 저에너지주택 건설의 어려움 한계, 향후 개선점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환경운동연합과 국회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대표 이미경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정관에서 ‘패시브하우스 도전-경험과 교훈’을 주제로 발표·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에서는 먼저 이태원집 건설을 진행한 장석진 건축사와 건축주인 이병우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설계·시공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태구 세명대 교수가 선진국 현황을 소개하며 국내 저에너지건축 확산을 위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장석진 건축사는 “건축주가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아 패시브하우스를 구현하려 했지만 건축비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최소 8000만원 이상 더 들어가는 것으로 산정돼, 비용 부담으로 결국 시행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패시브 구성요소로 ▷향을 고려한 구조 배치 ▷고단열·고기밀 ▷열교환 환기장치 설치를 고려했고, 그 외 친환경요소로 ▷빗물 활용 시설 ▷음식물 재처리 시설 ▷옥상녹화 등을 생각했다. 그러나 패시브하우스의 설계비가 기존 주택의 2~3배에 달하고 공사비는 20~30% 더 드는 데 반해, 건축주의 예산은 한정돼 있어 진행이 힘들었다는 것. 장 건축사는 “결국 적게나마 친환경요소를 유지하면서 단열 효율을 높이는 실용적인 의미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열기능이 우수한 ‘단열블록’을 단열재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국내에는 검증된 제품도, 수입제품을 적용할 기술도 없었다. 결국 독일의 제품 공급업체 본사 기술자를 섭외해 와야만 단열블록 공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경우 단열재 구입·적용에만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250㎜ 두께의 ‘평판 단열재’를 사용하게 됐다. 단열재가 너무 두껍다보니 시공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시공사에 400만원 정도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장 건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규모 건축주들이 저에너지건축을 지을 때 그들 스스로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도 많다”며 “패시브하우스는 정밀한 설계와 시공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승비용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패시브하우스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나라 기후와 시장 조건에 맞는 패시브하우스의 세부적 기준과 인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집 건축을 의뢰한 이병우 환경운동연합 회원은 “설계 과정에서 건축박람회 패시브하우스협회 부스도 여러 곳 찾아가 봤지만, 업체마다 하는 말이 모두 다른데다 다들 ‘자기가 정답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내가 국가에서 에너지를 담당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런 문제들을) 떠안아 가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며 “그래도 의지했던 바가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이태원집이 완성되기 까지 장장 9개월의 설계, 8개월의 공사 기간이 소요됐다. 이 씨는 “이전에 살던 집은 겨울철에 난방을 하지 않으면 집안 온도가 3~4℃까지 떨어졌지만, 지금 집은 난방 없이도 16~18℃ 정도는 유지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반인이 참고할만한 패시브하우스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개인이 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표준화된 가이드, 법적 기준 등이 마련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건축공학과 이태구 교수는 “우리나라는 저에너지건축 신축에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기존 주택의 에너지효율 검증 노력은 미흡하다”며 “우리나라에서 에너지효율 1등급 인증을 받은 건축물의 수준이라는 것이 독일로 치면 1980년대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 Directive)’ 제도를 시행, 모든 건축물(신축·기존)에 에너지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산정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또, 모든 건축물이 에너지 성능인증서를 갖도록 법으로 규정, 신규·기존 건물을 건축·매매·양도할 때 에너지성능 인증서를 취득·제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2013년부터 민간건축물에 대해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또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사람들에게 무이자 또는 저리이자 장기상환 형태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일에는 이미 패시브하우스가 1만5000여채 이상 지어진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 ‘에너지 생산’에만 투자하고 ‘에너지 절약’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지원이나 혜택이 없다”고 지적했다. 높은 초기투자 비용에 대한 지원도 없고, 힘들게 저에너지주택을 지어도 에너지 절약에 따르는 혜택조차 없기 때문에 국내 패시브하우스의 확산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어진 토론에는 제종길 도시와자연연구소장, 양이원영 환경에너지연합 탈핵에너지국장, 박기범 국토해양부 녹색건축과 사무관, 고용구 저탄소녹색건축기술포럼 회장, 이윤하 생태건축연구소장, 이태구 세명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에 대해 박기범 국토해양부 사무관은 “정부에서도 신축 패시브하우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가령 ‘남쪽에 창을 낼 때 어느정도 크기로 내야 에너지절감에 가장 효과적일까’, ‘비용은 어느 정도 필요할까’와 같은 작업들을 단계적으로 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그게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라 아직 사용자들이 활용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관은 또 “신축 건물도 중요하지만 기존 건축들이 더 문제다. 기존 건축물을 저에너지형으로 ‘그린리모델링’한다고 할 때 가장 문제는 ‘돈’이다. 국토부에서도 예산을 신청해 그린리모델링을 하는 사람들에게 2.5% 정도의 저리로 융자 해주는 방안을 추진했었지만, 지식경제부에서 이 예산을 반영해 주지 않았다. 마음은 있는데 도와드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미경(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국회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 대표가 참석해 인사말을 전했다.

 

▲ 이미경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국회의원회관에 들어갈 때마다 에너지소비가 너무 높은 건물이라는 점에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 국가가 공공건물을 지을 때는 훨씬 더 녹색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강제적인 조항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