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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민주·이범규·전지웅 ‘브링유어컵’ 공동대표
전국 커피전문점 수 약 1만5000여개. 한해 커피 수입액 7억1700만 달러 상당. 하루 커피 소비량 약 3700만잔. 성인 1명 연간 커피 소비량 338잔.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지표들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문화를 문제시 할 순 없다. ‘기호식품’이라는 말 그대로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피를 담아 마시는 ‘일회용 컵’이다.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종이컵 소비량은 한해 116억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나마도 2007년 이후 사용량 증가분은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국내 1인당 커피 소비량이 2007년 207잔에서 지난해 338잔으로 63%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종이컵 소비량은 약 189억개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종이컵 쓰레기 넘치는 ‘커피공화국’…원인은 ‘재활용 체계 미흡’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종이컵 10억개를 재활용할 경우 여의도 면적의 10배 넓이 숲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활용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환경연대는 국내 종이컵 재활용률이 14%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왜 이렇게 낮을까. 방수코팅 처리가 되어 있는 종이컵은 물에 녹여 재활용하는 일반 폐지와 함께 배출할 경우 재활용되지 못하고 모두 폐기처리 된다. 일반 폐지와 따로 수거해 내부코팅 부분을 기계로 벗겨내야만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종이컵 수거 체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효과 있던 ‘보증금제’는 폐지…후속 정책들 실효성 적어
정부도 종이컵 과다사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 시행을 시도해 왔다. 환경부는 2003년부터 2008년 3월까지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시행, 각 업체가 일회용 컵에 대해 50~100원의 보증금을 받은 뒤 컵을 가져오면 이를 되돌려주도록 했었다. 당시 일회용 컵 회수율은 2003년 18.9%에서 2006년 37.6%로 두 배 수준까지 높아지는 등 일회용 컵 사용 억제·재활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5년 만에 폐지됐다.
이후 환경부는 다회용 개인 컵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커피값을 300원 할인해주는 인센티브제도, 자발적 협약을 통한 ‘1회용 컵 없는 매장’ 운영 등을 통해 종이컵 사용률을 낮추기 위해 힘써 왔다. 그러나 자기 컵을 가지고 다니는 일의 불편함과 일회용 컵 문제에 대한 소비자 인식 부족 등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법령상 일회용 컵 사용 규제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일회용 컵 사용을 강제로 규제하기는 힘들다”며 “과거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는 국민의 권익 침해 우려가 있어 폐지됐다”고 말했다.
이범규·전지웅·김민주의 당찬 기대 “대학생 커피문화는 바꿀 수 있겠죠”
이처럼 일회용 컵 과다사용이 심각한 자원낭비와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은 없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다. 소비자 스스로 종이컵 과다사용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기 컵 가지고 다니기’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찮다’ ‘무겁다’ 등의 이유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문제의 해결사를 자청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기업 ‘Bring Your Cup(브링유어컵)’이다. 카이스트 학생 3인이 모여 지난 5월 9일 설립했다. 이들의 목표는 ‘일회용 컵 없는 커피문화’를 만드는 것. 그를 위해 텀블러(휴대용 보온병)를 제작해 저렴한 가격(1만5000원)에 유통시키고,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가는 고객들이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구매할 수 있도록 서울 지역 카페들과 제휴 맺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기업의 대표 이범규(23), 전지웅(26), 김민주(25)씨를 만나 그간의 활동과 앞으로의 목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야기를 꺼낸 지 5분도 안 돼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죠.” 전지웅 대표는 처음 제휴를 맺기 위해 카페를 찾아 나섰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지난 두 달간 홍대 앞 카페 18곳과 ‘아메리카노 1500원 판매’ 제휴를 맺는데 성공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홍대 앞에는 70~80개의 카페가 있는데 대부분 분위기도 좋고 원두도 좋은 것을 쓰고 있어요. 다들 자기 커피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데, 4000~5000원 하는 커피를 1500원에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우리 카페는 그런 카페가 아니다’라며 단번에 거절하는 곳이 많았어요.”
대부분 카페들이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라는 의도에는 동의하면서도 커피를 1500원이라는 싼 값에 판매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는 것. 10곳 중 7곳은 단번에 거절, 그 중 1~2곳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 뒤 거절. 거절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계속된 노력 끝에 15곳의 제휴를 얻어냈다. 나머지 3곳은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며 카페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 브링유어컵 제휴 카페 모습
두 달여 사투 끝에 홍대 앞 등서 텀블러 300여개 팔아
‘동대문 봄장’과 ‘영등포 달시장’에서 다회용 컵을 무료로(보증금 1000원) 대여해 주는 일도 꾸준히 해 왔다. 모두 다회용 컵 사용 문화 확산을 위한 일이다. “동대문 봄장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거나,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하는 장이예요. 그곳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다회용 컵을 빌려주고, 텀블러 사용 문화도 홍보하고 있습니다.”
 ▲김민주씨가 서울 영등포 달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텀블러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300개의 텀블러를 팔았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텀블러 하나당 2만8000원 정도를 받지만, 이들은 1만5000원에 판매한다. 때문에 텀블러 하나를 판매하고 생기는 수익은 2000~3000원 꼴. 활동비를 대기에도 부족한 액수다. 팀원들은 활동비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과외를 2~3개씩 병행하고 있다. 애초부터 돈 벌기를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닌 만큼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만 향후 수익이 생기면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에 맞게 그 중 50%를 또 다른 기부 활동에 쓰기로 합의했다고.
9월부터는 홍대 외에 이화여대, 성균관대, 건국대, 서울대 등 다른 곳에서도 카페 제휴를 맺을 계획이다. “브링유어컵으로 인해 일회용 컵 사용이 근절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대학생들의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갖고 있어요. 길을 걸어다닐 때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5미터에 한 명쯤은 보였으면 하는 게 저희의 바람입니다.”
학생들의 장난스런 도전이 아니다. 사회와 환경을 위한 진지한 운동이다. 이들의 의미 있는 행보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에 일회용 컵 쓰레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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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