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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과 같은 블랙아웃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주요 대안인 ‘에너지원 다양화’가 터무니없이 낮은 전기료 때문에 국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다. 에너지 다원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의 에너지사업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전기요금 인상이 정체돼 온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사업에 뛰어들 경우 원가 회수조차 힘든 게 현실이었다. 자연 민간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선진 유럽국가들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확대 등 에너지원 다양화가 제도적 지원 아래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민간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13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8회 서울국제전력시장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온 윤원철 한양대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주최한 이번 컨퍼런스는 ‘기후변화와 수급불안 시대의 전력시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전력거래소 남호기 이사장, 전기위원회 구자윤 위원장, 앤드류 다글레쉬(Andrew Daglesish) 주한영국대사관 부대사를 비롯, 관련 학계·산업계 종사자 등 420여명이 참석했다.

 

 

마이클 워터스 주한영국대사관 기후변화와 에너지과 팀장은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를 77%(2006년 대비)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탄소감축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설정해 목표 달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는 난방·자동차 연료 등이 모두 전기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050년 전력수요는 지금의 2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수급을 동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청정화석연료 등으로 에너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난해 9월 15일 5000MW급 순환정전 사건 당시 9000여명의 개인·사업장이 약 6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 정전사태의 발생 여건은 그 전부터 마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야시간 과도한 전력요금 할인’, ‘전기 냉난방기구의 급속한 보급’, ‘물가동결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비현실화’가 당시 블랙아웃을 불러올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특히 전기요금 현실화(인상)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원 다양화의 일환인 ‘지역에너지시스템(CES=Community Energy System)’이 국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현실적인 전기요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CES 사업자는 법이 처음 도입된 2004년 26개 사업자와 32개 사업체였던 것이, 현재는 13개 사업자와 17개 사업체로 절반이나 줄었다. 그가 사업자들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 봤더니 “에너지 발전 비용이 요금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낮은 전기료에 묶이다 보니 이익은커녕 운영비용 회수도 못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전기가 너무 싸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전기 사용으로 몰리게 된 것이 정전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전력수급 안정의 열쇠라는 이야기다.

 

 

장 프랑수아 코닐 라코스테(Jean-François Conil-Lacoste) 유럽전력거래소(EPEX SPOT) 대표는 “과거 유럽전력시장은 발전→송전→배전이 하나로 수직 계열화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발전/거래/배전으로 분리해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에너지원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원자력·신재생에너지 환경에서의 전력시장’을 주제로 이같이 발표하며 “시장 형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거래’이고,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라코스테 대표는 “유럽전력거래소의 역할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을 설정하는 것”이라며 “하루 전 시장과 당일 시장의 전력수급 상황을 반영해 가격을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전력거래소는 현재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스위스 등에 200개 회원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거래량은 314 TWh(테라와트시, 1TWh=1012Wh)다.

 

 

독일 전력시장의 신재생에너지 가격 설정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독일은 신재생발전을 급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라며 “처음에는 신재생에너지 가격이 마이너스대로 형성됐었지만, 발전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경우 원자력에너지 발전량이 84%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의 대부분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프랑스 국민들은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 원전에 대해 우호적”이라면서도 “올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추진이 강화되고, 에너지 다원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이외에도 단 우드핀(Dan Woodfin) 텍사스주 전력망신뢰도위원회 전력시스템 책임자가 ‘텍사스 순환정전 대응 사례’를 발표했다. 발표 후 동의대 유상희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 토론에는 건국대 노재형 교수, 이화여대 김윤경 교수, 숭실대 송경빈·김대욱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