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꾸러미 사업체를 통해 농산물을 판매하는 지역 농가 회원 ⓒ공생공소 제공
‘푸드마일(food mile)’이라는 용어가 있다. 먹거리가 생산된 곳에서부터 소비되는 곳까지의 이동 거리를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먹거리들이 배와 비행기에 실려 적게는 수백km, 많게는 수만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 한살림연합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되는 뉴질랜드산 키위는 9994km, 미국산 밀가루는 2만62km, 중국산 배추는 968km를 이동한다. ‘세계화 시대에 그 정도 먹거리 이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결코 ‘당연시 할 수 없는’ 문제다.
농림수산식품부 자료(2010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6%로 OECD 회원국(34개국) 중 최하위(28위)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먹거리 중 74%는 세계 곳곳에서 우리나라까지 이동한다는 얘기가 된다. 호주(176%), 프랑스(164%), 미국(150%), 캐나다(143%) 등은 식량자급률이 100%가 넘고, OECD 평균도 83%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먹거리 이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플리커
국내 먹거리도 예외는 아니다. 식품 유통이 산업화·대형화 되면서 국내 농산물들도 이곳저곳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농산물들은 일단 생산되면 서울 가락시장으로 일제히 집결된다. 그 다음 다시 전국 곳곳의 소매점과 마트로 이동한다. 생산된 지역 근처에서 바로 소비될 수도 있었던 농산물들이 여기저기를 이동하느라 애꿎은 연료를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을 시작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지역 먹거리를 소비하자는 것이다.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을 소비하면 먹거리 이동을 줄여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뿐 아니다. 대량유통구조 속에서는 ‘불특정 다수’였던 소비자와 ‘익명’이었던 생산자 간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그 신뢰를 기반으로 소비자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자는 자부심과 보람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돼, 정부의 정책적 지원까지 받고 있다. 충남발전연구원에서 로컬푸드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허남혁 박사는 “미국의 경우 2009년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우리가 먹는 음식의 출처를 알자)’라는 강도 높은 로컬푸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며 “영국과 프랑스도 농민과 소비자 간 직거래를 장려하는 정책들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로컬푸드 운동 ‘꾸러미사업’ 중심으로 확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한 로컬푸드(지역농산물 직거래) 지원 정책은 없다. 하지만 도시텃밭, 지역직거래장터, 생협, 꾸러미사업 등을 통해 조금씩 로컬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형태는 ‘꾸러미사업’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모아 근처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배달해주는 것이다. 공주 지역의 ‘공생공소’, 완주 지역의 ‘건강밥상꾸러미’, 이천의 ‘콩세알’, 춘천의 ‘봄내살림’ 등 지역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들 꾸러미 사업체들은 서울을 포함해 거리가 먼 지역에는 꾸러미를 배달하지 않는다. 로컬푸드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공생공소 운영진인 유영글(28)씨는 “공주 지역과 가까운 대전, 세종, 천안 등지에만 꾸러미를 배달한다”며 “소비자들은 한달에 5만원(2회 배송) 또는 10만원(4회 배송)을 먼저 지불하고 생산자들은 그때그때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허남혁 박사는 “로컬푸드는 환경은 물론 지역 공동체와 국내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며 “가까운 먹거리를 이용함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 지역 소비자 회원들에게 배달되는 꾸러미 ⓒ공생공소 제공
▲ 소비자들에게 보낼 꾸러미를 농가 회원들이 직접 포장하고 있다. ⓒ공생공소 제공
[인터뷰] “지역 농산물 소비, 행복한 공동체 만드는 일”
로컬푸드 운동 앞장선 20대 청년…공생공소 ‘나비회원’ 유영글씨
환경을 살리고 건강을 지키는 로컬푸드 운동. 이런 먹거리 문제에는 주부들만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 로컬푸드 운동 확산에 앞장선 한 20대 청년이 있다. 꾸러미 사업을 통해 공주지역 농가들과 주변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공생공소’의 운영진 유영글(28)씨다.
공생공소에서 그는 ‘나비회원’이다. ‘시골에 있는 꽃과 도시에 있는 꽃의 사랑을 연결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공생공소에서 농가 회원들은 ‘시골꽃’, 도시 회원들은 ‘도시꽃’이라 불려요. 지금 저는 공주 지역 17개 농가와 세종·대전·천안 등 인접지역 소비자 100여명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씨는 ‘서로 배려하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로컬푸드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요즘엔 모든 것들이 너무 개인화되어 있어요. 특히 농촌지역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데,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그런 관계가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게 안타까웠어요. 지역에서 생산자가 건강하게 농사를 짓고, 소비자는 그걸 믿고 사주는 관계를 통해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래야 건강한 먹거리도 생산될 수 있고요.”
그는 대형화된 유통 구조가 먹거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안타까워했다. “옛날 5일장처럼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지역 장터는 이제 거의 다 사라졌어요.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아주 멀리서 온, 누가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 먹거리들이 판매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점점 더 단절돼 갔어요. 생산자들은 더 저렴하게 유통시키기 위해 농약·화학비료를 뿌리고, 소비자들은 먹거리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죠. 음식이 돈을 버는 수단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의 꿈은 지역 먹거리를 통해 행복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로컬푸드의 모범 사례가 되어 우리나라 이곳저곳에 로컬푸드를 퍼뜨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희가 한 것을 따라하면 실패하지 않고 로컬푸드를 생산·소비할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는 정말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던 20대 청년. 그의 말대로 로컬푸드 운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한 방법이라면, 동참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