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낮 12시 30분. 점심이 시작된 서울대 관악캠퍼스 음악미술대 건물에 자리잡은 식당. 자리를 얻지 못한 학생손님들이 서성인다. 여느 학생식당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이곳을 학생들이 찾은 이유는 채식뷔페를 즐기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식당 안쪽 배식대에 놓인 현미콩밥과 느타리 버섯볶음, 연두부, 쌈 다시마 등 10여 개 반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근 1~2년 사이 대학가에서도 채식바람이 불고 있다. 2010년 10월 서울대에 채식당이 처음 생긴 이후 지난해 6월 동국대, 8월에 서울대 2호점이 문을 열었다. 대학가의 이러한 채식바람은 건강ㆍ환경 혹은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육식과 거리를 두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당국에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동국대의 채식당 운영은 건학이념인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산 것을 죽이지 않는다) 정신에서 비롯됐다. 채식당 위탁업체인 아워홈 동국대 지점장 이상민씨는 “불교 종립대학의 특성상 스님들이나 채식주의자의 수요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서울대만 종교적 이유로 외국인 유학생 등을 위한 채식 식당을 운영했다. 동국대는 채식주의자 연구원이 총장에게 채식 식당을 만들어달라는 편지를 쓰는 등 요구가 많아지자 대학측이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환경 보호 때문에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온실가스의 51%는 식용 동물 사육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채식당은 100%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한다. 젓갈이나 멸치육수도 쓰지 않는다. 식단을 맛본 교직원과 학생들은 식단에 대한 호응이 높다. 이 점장은 “채식주의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해 앞으로는 달걀, 유제품 등도 식단에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도입 초기지만 채식당 호응은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고 있다. 채식주의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학생, 외국인학생, 외부인까지 찾고 있다.
동국대 채식당을 일주일에 한번 정도 찾는다는 직장인 문기현(42)씨는 “외부에서 점심약속이 있을 때 이곳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도 “외부의 채식주의자 모임이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먹기도 한다”며 “하루 손님 150여명을 예상하고 문을 열었지만 최근에는 24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 학생식당이 3000원 전후인 데 반해 채식뷔페는 5000원을 웃도는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 동국대 관계자는 “뷔페식이라 식재료비가 만만치 않아 70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 주문식으로 할 수 있지만 메뉴를 다양하게 만들 수 없는 단점이 있어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대학생 채식인 모임인 ‘아카베지’의 이원복 대표는 “채식은 단순히 식도락의 측면을 넘어 개인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감안해 학교측에 일정부분 비용을 부담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식바람 열풍은 대학 캠퍼스만이 아니다. 직장 구내 식당서도 채식 코너가 생겼다. 네이버는 지난해부터 ‘마크로비오틱(곡물·채소의 뿌리·껍질까지 모두 이용해 만드는 식단)’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식보다 1.5배 바싸지만 늘 준비된 분량이 다 나간다.
모바일게임사 엔타즈도 직원 전용 유기농 채식당을 운영한다. 150명 가량되는 직원의 90% 이상이 이 식당을 점심 저녁으로 이용한다. 단호박 영양밥, 현미밥, 잡곡밥, 곤드레 나물밥 등 매일 매일 다른 종류의 밥과 반찬이 나오니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다.
문이나래 엔타즈 홍보팀장은 “1년 정도 채식당을 운영한 결과 몸이 건강해지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진 직원들이 많다”며 “채식당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선 직원들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회사의 비전이 반영된 문화”라고 말했다.
한편 채식 열풍에 빠진 연예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우 홍보대사를 맡았던 가수 이효리 씨는 작년 8월 채식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미스코리아 이하늬 씨와 송일국 씨를 비롯해 김창완, 김제동, 윤진서 씨도 최근 채식을 선언했다.
채식실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자 채식 카페 회원도 늘었다. 채식인이 가장 많이 가입한 ‘한울벗태식나라’ 카페 회원 수는 현재 5만 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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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