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사롭고 화창한 날씨, 싱그러운 신록의 거리를 거닐 때면 라일락 꽃 향기가 코끝을 스민다. 멀리서도 “아~ 라일락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듯이 은근히 진하고 달콤 향긋하며 품위 있는 향기를 지녔다. 대개 연한 보랏빛을 띠지만 품종에 따라 하얀색, 빨간색, 파란색 등이 다채롭다. 이르면 4월부터 피기 시작해 5월까지 이어져 초여름의 길목을 알리는 꽃이다.

 

완연한 봄기운이 스며들며 초여름의 입김이 불어올 때, 녹음이 짙어지는 숲 사이에 핀 라일락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젊은 날의 추억’ 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라일락을 가리켜 ‘리라꽃’이라고 부른다. 발칸반도를 포함한 아랍지방이 원산지로 아랍어 ‘laylak’이 페르시아에서 lilak(리락)으로 다시 프랑스는 ‘lilas(리라)’로 변했는데 이 프랑스어의 ‘리라’가 국내 노래 가사로 나오면서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영어 ‘라일락’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됐다.

 

라일락의 우리 이름은 수수꽃다리다. 송이처럼 피어나는 작은 꽃 무더기가 마치 수수이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수수꽃다리와 라일락 외에도 정향나무, 리라꽃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같은 나무거나 비슷하게 생긴 형제격이다. 라일락은 서양의 수수꽃다리, 정향나무는 중국식, 리라꽃나무는 프랑스식 이름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이하 생략)-
 
이문세의 <가로수그늘아래서면>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1988년 발표한 5집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25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국민노래다. 특히 그의 5집 앨범은 <붉은 노을> <광화문 연가> 등이 수록된 명곡집. 최근 한 가수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러 젊은이들에게도 익숙한 노래가 됐다. 다음은 그의 히트곡인 <광화문 연가>의 노랫말이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이하 생략)-

 

<광화문 연가>는 쓸쓸한 겨울에 눈 내린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 때 잘 어울리는 노래다. 하지만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라는 노랫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라일락’을 가리킨다.

 

 

장년층 이상에서는 가수 현인이 부르던 <베사메무쵸>라는 노래에 나오는 ‘리라꽃 향기’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Besame mucho(베사메무쵸)는 영어로 ‘kiss me much’라는 뜻으로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 주오’라는 뜻. <베사메무쵸>의 원곡에는 리라꽃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지만 원곡을 번역해 우리나라에서 부르게 되면서 알려졌다.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이라는 노랫말처럼 남은 오월을 보내는 건 어떨까.

정연화 온케이웨더 기자 lotusflower@onkweather.com